공포 속에 사는 현대인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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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31면

공포는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한 감정반응이다. 공포를 못 느낀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공포가 심하거나 만성화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공포는 공포를 부른다. 더구나 공포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퇴행시키며 극도로 의존적으로 만든다. 겁에 질린 사람처럼 부리기 쉬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현대사회에서 공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공포가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어 정치·교육·경제 등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서움에 휩싸여 살고 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안전한가?

TV나 매스컴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연일 무서운 사건사고 소식을 쏟아놓는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중 끔찍한 사건들만 모아 보여주는 매스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를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사실 사회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의 일상에서의 위험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치명적인 병들도 하나씩 정복돼 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은 점점 더 세상이 위험하고 공포스럽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희귀병에 대한 두려움은 관련 연구비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게 만들어, 감기에 걸린 가난한 아이들이 치료비 부족으로 죽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이제 공포는 경제와 정치를 움직이는 주된 동력이 된다. 혹시나 남들에게 뒤질까 두려워진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를 한다. 이 틈새를 장사꾼과 정치가들이 파고든다. 현대의 광고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다. 광고는 ‘넌 실패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은근히 자극해 물건을 판다. 정치는 희망을 약속하기보다 상대방을 뽑을 경우 세상이 망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목적은 다 똑같다. ‘이 위험을 예방하려면 우리 물건을 사고, 우리 정당을 찍을 것이며, 이 약을 먹으시오’다.

이제 굶주림은 공포가 되지 못한다. 남들보다 더 잘 먹지 못하는 것, 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공포 대상이 된다. 실패가 개인의 무능함과 게으름의 지표로 될 때 실패는 곧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이제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그저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나 세상은 불확실하고 미래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다. 사실 불확실성은 인간의 삶의 한 조건이다. 그러나 이 불확실성이 규칙을 넘어설 정도로 너무 클 경우, 사람들의 불안 수준은 높아지고, 다가올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자기방어적이 돼 공격적이 되기 쉽다.

애석하게도 현대사회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세계화 추세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면서 이제까지 믿고 의지해왔던 가치체계가 무너지고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권이 주어지고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유일한 진리일 수 없다는, 즉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관에 절대적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불안감의 여지를 남겨놓게 되었다. 내가 틀리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을 것인가? 무엇이 진리인가? 이런 회의는 역으로 우리를 하나의 믿음에 집착하는 광신도로 만들거나, 아니면 파괴적 냉소나 허무로 떠다니게 만든다.

현대사회에서 공포의 문제는 이제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생활 전반에 만연해 있다. 공포의 대상 자체도 분명히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형태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힘에 대한 공포로 화해 버렸다. 이 공포는 우리 존재의 근간인 신뢰와 가치를 뒤흔들어 버리고 사람들을 도망칠 수도, 맞서 싸울 수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공포와 분노가 들끓는 곳이 된다.

이렇게 공포가 우리를 지배할 때 이 공포를 이기는 길은 눈을 똑바로 뜨고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확한 대응을 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에 지나친 에너지를 소모하는 피로를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진정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과 과장되고 상업화된 공포를 구분할 수 있게 되고 다시금 우리의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인 것이다.



김혜남 52세. 고려대 의대 졸업. 2006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 수상, 저서로 『어른으로 산다는
것』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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