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 시르테 진격 … “카다피 167만달러 현상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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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시민들이 24일(현지시간) 트리폴리 무아마르 카다피의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에서 거대한 시민군 깃발을 펼쳐 보이며 환호하고 있다. [트리폴리 AP=연합뉴스]


24일 오후(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중심가의 그린광장에 도착하니 200명가량의 시민이 모여 시민군의 진주를 축하하고 있었다. 광장 주변에선 시민군들이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며 하늘을 향해 축포를 쐈다. 광장 곳곳에는 치열했던 시민군과 카다피군의 전투를 말해 주듯 탄피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리비아 지도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의 얼굴이 담긴 선전 포스터도 미처 제거되지 않은 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자신의 직업을 의사라고 밝힌 무함마드(50)는 “우리 자손에게 인간의 존엄을 인정받는 세상과 자유를 물려줄 수 있어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감격했다. 시민군은 광장의 이름을 카다피 집권 이전의 이름인 순교자 광장으로 되돌렸다. 녹색은 카다피의 상징색이다.

 하지만 광장을 창밖으로 내다보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카다피의 돌발 행동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폴리 일부 지역에 남아 있는 카다피군의 공격도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카다피의 요새였던 바브 알아지지야 주변에서도 로켓포 폭발음이 끊이지 않는 등 여전히 불안한 상태라는 것이 주민들의 전언이다.

 시민군의 트리폴리 점령으로 리비아 내전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군 측은 24일(현지시간) 카다피의 고향이자 카다피군의 거점인 시르테를 공략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르테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카다피의 은신처로 거론되기도 한다. 시민군 측 유엔 주재 대사인 이브라힘 다바시는 “시르테가 48시간 안에 시민군에게 점령될 것이며 리비아 전역도 사흘 안에 시민군이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메드 바니 시민군 대변인은 “하지만 무고한 희생을 피하기 위해 시르테 카다피 세력 측과 협상도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르테의 카다피 지지세력은 결사항전의 전의를 가다듬고 있다. 현재 시르테에서는 카다피 측이 주민들에게 무기를 나눠주며 시민군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르테에는 카다피군의 스커드 미사일이 배치돼 있어 대규모 인명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 측은 “카다피군이 미사일 외에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다피 정부 대변인은 “우리는 수개월 또는 수년간 시민군과 나토군의 공격에 맞서 싸울 수 있다”며 “각 부족이 병력을 규합해 시민군과 싸우기 위해 트리폴리로 진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도국가위원회(NTC)는 “이제 필요한 것은 리비아 국민의 화합”이라고 강조했다. 또 "카다피에 대해 약 167만 달러(약 18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지 언론 알오루바TV에 따르면 카다피는 24일 트리폴리의 한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요새에서 철수한 것은 ‘전술적 이동’일 뿐”이라며 “나는 승리 또는 순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쥐새끼들(시민군을 지칭)을 트리폴리에서 쓸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 소식통들은 그의 메시지가 생방송이 아닌 전화를 통해 미리 녹음됐을 가능성이 커 카다피가 이미 트리폴리를 탈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언 특파원

◆시르테=카다피의 고향으로 리비아의 주요 군사도시 중 하나다. 지중해 연안에 있으며 수도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360㎞ 떨어져 있다. 카다피는 1942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69년 카다피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사막 도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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