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코스피 상장사 접수 … 돈 댄 사람은 가수·개그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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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 지역의 한 명품 시계점에 중년 남성 8명이 들어섰다. 이들은 시가 수천만원짜리 명품 시계들을 이것저것 만져 보더니 롤렉스, 브레게, 피아제, 프랭크 뮬러 등 총 2억여원 상당의 시계 8개를 구매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150억원의 유상증자와 코스피 상장에 성공했던 다산리츠의 임원들이었다.

 이 회사 창업주 이모(불구속 기소)씨는 앞서 2008년 4월 국토해양부에서 국내 1호 자기관리리츠(상근 임직원이 직접 자산을 투자·운용하는 회사) 영업인가를 받았다. 자본금 70억원만 마련하면 코스피 시장에 회사를 상장할 수 있었지만 1년 반 동안 돈은 모이지 않았다. 결국 정부로부터 영업인가 취소 예정 통보까지 받게 된 이씨는 다단계사업 전문가인 조모(구속 기소)씨를 급하게 영입했다.

 익산 역전파 출신의 전직 조직폭력배였던 조씨는 2009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사채업자들로부터 234억원의 급전을 얻어 영업인가 연장대금과 상장대금을 납입한 뒤 곧바로 돈을 빼내 되갚는 가장납입 수법을 사용했다. 덕택에 다산리츠는 지난해 8월과 9월 150억원의 유상증자와 코스피 상장에 성공했다.

 조씨 등은 이후 부동산 투자에 사용된 회사자금 110억원 중 56억원을 빼내 마음대로 사용했다. 임직원 급여로 8억원, 아파트 매매대금으로 10억원을 지출했고 에쿠스 리무진 등 회사 명의로 고급 차량 4대를 굴렸다. 한 임원의 애인인 룸살롱 여종업원을 위해 1억원이 지출되기도 했다. 명품 시계를 구입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문제는 단기 사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14억여원을 조폭에게 빌린 것이다. 강남의 유명 고깃집을 운영하는 나모(불구속 기소)씨를 비롯해 범서방파·고창파·송정리파·영광파 등 간부와 조직원들이 잇따라 조씨 등을 찾아와 재떨이로 머리를 치는 등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순식간에 대여금 1억원이 5억원으로, 10억원이 30억원으로, 3억원이 20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다급해진 조씨는 총 66억원 상당의 약속어음 14장을 찍어 냈고 다산리츠는 이 때문에 지난 6월 역대 최단기간인 상장 9개월 만에 상장 폐지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22일 조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다산리츠 관계자 10명과 폭력배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여성 트로트 가수 김모씨와 개그맨 김모씨,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모씨, 고급 룸살롱 마담 등이 조폭의 전주(錢主)였다는 사실도 확인했으나 처벌하지는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단순히 자금 운용을 맡겨 시중 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익을 얻었을 뿐 범죄와는 무관했다”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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