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박정환 후지쓰배 우승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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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정환 9단

후지쓰배 세계선수권은 세계대회 중 가장 먼저 1988년에 생겨났다. 같은 해 응씨배가 출범하면서 바둑대회는 비로소 국제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지진 때문에 연기된 이번 24회 후지쓰배는 박정환 9단이란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면서 세계바둑의 한 획을 그었다. 또 쇠락할 대로 쇠락한 일본 바둑에도 이야마 유타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 줬고 그 외에도 바둑계의 숙제라 할 ‘대회 진행’ 측면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

 18세의 박정환은 15세 때부터 ‘한국 바둑의 미래’로 통했다. 국내 대회에서 수차 우승하며 준비된 실력을 보였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실패를 거듭했다. 이번 대회는 운도 좋았다. 강적이라 할 구리와 최철한이 일본의 이야마 유타에게 졌고 이세돌은 대착각을 범하며 복병 추쥔에게 졌다. 박정환은 이야마와의 준결승에서 대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랐다. 쿵제는 셰허에게, 셰허는 장웨이제에게, 장웨이제는 추쥔에게 졌다. 이야마와 추쥔이 강자들을 꺾은 뒤 박정환에게 우승컵을 헌납한 격이 됐다. 하지만 모든 강자는 이렇게 운과 더불어 비상한다. 준비된 신예 박정환은 ‘잠룡’과 같아서 이제 빛을 봤으니 거칠 것 없이 뻗어갈 것이다.

 이야마 유타 9단은 1989년생으로 일본에선 사상 최연소 명인이 된 인물이다. 바둑의 미래를 위해선 한·중·일 3국 중 어느 하나가 사라져선 안 된다. 이야마는 박정환과의 준결승에서 시종 우세했다. 이야마가 이번 대회에서 뚜렷한 경쟁력을 보여준 것, 일본 바둑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는 그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후지쓰배는 재난 때문에 연기되어 오사카에서 치러졌는데 32강전부터 결승까지 딱 5일이 걸렸다. 32강부터 결승까지 단번에 치러진 것은 세계대회 사상 처음이다. 또 하루도 쉬지 않음으로써 준결승부터는 체력전 양상이 펼쳐졌다. 바둑도 스포츠가 됐으니 대회 진행을 몇 달이나 1년씩 끄는 것은 이상하다. 원론적으로는 골프나 테니스처럼 한번에 끝내야 한다. 후지쓰배가 그걸 보여줬다. 참 시원하다. 그러나 하루도 쉬지 않는 것은 어떨까. 아직은 너무 심하다는 중론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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