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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책] MB 8·15 경축사와 시장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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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정수
전문기자

경제활동에 관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무엇일까. 자주 생각하게 되는 주제다. 우리나라 정도의 소득수준이나 경제규모 또는 성장세를 가지려면 시장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봐야 한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전에는 지금 수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경우 경제에 관한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力割分擔)에 관해 생각할 일이 별로 없다. 경제 덩치가 커지고 수준이 높아지면서 민간경제에 정부가 개입할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논란거리가 된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지 덜 거둬야 하는지, 지출을 늘려야 하는지 줄여야 하는지,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지 풀어야 하는지 등에 관해 왈가왈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민간경제에 관한 정부의 개입이 합당한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정부가 서민을 돕겠다는 얘기를 꺼내더니, 지난해부터 동반성장을 앞세워 기업 활동에 숟가락을 얹으면서, 갈수록 정부·민간 역할에 관한 고민을 더 자주하게 된다. 경제의 덩치가 커지고 (발전과 성숙) 수준이 높아지는데도 정부 개입이 더 넓어지고 더 잦아지기 때문이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가 또 그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열심히 들어본 광복절 경축사. 다 옳은 소리였다.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번영’하는 식으로 시장경제가 진화해야 한다는 것은 다 옳거니 무릎을 칠 소리다. 그렇다고 뭔가 걸리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용어선택부터 그렇다.

 경축사대로라면, 우리 (대)기업은 탐욕스러운 경영이나 하고, 우리 자본은 무책임하고 방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부자는 날로 큰돈을 벌며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기만 한다. 또 그런 좋지 않은 경제상황이, 우리 시장경제가 나쁘거나 아직 진화가 덜 된 데서 연유한 것이 된다. 대통령이 한 연설이었기 망정이지, 일반인이나 젊은이가 이같이 말했다면, 보수세력이 늘 문제 삼아온 ‘우리 체제와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비칠 수 있는 용어 선택이었다.

 그러나 손가락(말 표현)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의도나 지향하는 바)을 보라고 했다. 사실 경축사가 지향(指向)하는 바가 문제 있는 건 아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다 같이 잘살자는데, 그걸 나쁘다거나 바라지 않을 사람은 적어도 이 땅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론도 아주 긍정적이다. 공생발전·재정건전화 같은 것을 구호에 그치지 말고 구체적 실천방안을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재정건전화가 아니라 공생발전 때문이다. 공생발전이란 말이 품고 있는 정부의 역할을, 정책으로 또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개입으로 거침없이 내놓을까 해서다.

 그런 걱정에서, 너무나 당연해서 공허한 얘기로 치부하는 점을 이참에 상기했으면 한다.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이 민간 영역과 정부 영역 간에 분명하게 그어놓은 선, 그 역할 분담의 선을 되새겼으면 한다.

 보통 나라의 경우, 돈을 구해 투자를 하고 사람을 고용해서 상품을 시장에 팔고 거기서 돈을 벌고 나서 (세금을 제한) 그 소득을 쓰는 것까지는, 기업이든 자영업자든 농민이든 민간이 한다. 시쳇말로, 투자·일자리창출·소득창출·소비·저축과 그와 관련된 거래는 민간의 몫이다. 거기에 정부가 낄 자리는 없다. 특정 부류(部類)의 기업이나 부문을 들어 ‘당신네는 이러이러한 업종에서는 손을 떼라, 번 돈을 이러저러한 기업과 거래할 때는 그들을 돕는 데 쓰라’는 둥, 또는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들어 ‘너무 비싸다, 값을 깎으라’는 둥 주문을 정부가 할 틈은 없다. 보통 나라에서라면 그렇다는 얘기다.

 정작 정부가 맡아야 할 역할은 그 다음부터다. 민간이 번 소득 중에서 얼마를 세금으로 거둘지, 거둔 세금으로 (투자·고용·복지·민간지원 등) 어떤 일에 얼마를 쓸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어느 지출항목을 줄일지 등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정부가 정할 일이다.

 한마디로 경축사의 내용 중에 공생발전 부분은 그 선언적 단계에 남겨 두었으면 한다. 대신 재정건전화(財政健全化) 부분은 하루속히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겼으면 한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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