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추행에 관대한 일부 사회지도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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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4월 ‘지하철 성추행’ 파문으로 사직했던 판사가 변호사로 변신했다고 한다. 이 전직 판사는 전동차 안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실이 알려지자 대법원 징계를 피해 사표를 냈다. 피해 여성과 합의해 고소도 취하됐다. 징계와 형사처벌을 모두 피함으로써 법적으로 변호사 활동에 제약이 없어진 것이다. 14세 여중생 제자와 성관계를 한 경북의 한 교사는 최근 복직했다. 정직 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받은 탓에 가능했다. 부적절한 행동을 한 공인(公人)에게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고 법정과 교단에 되돌려 보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두 사건의 바탕에는 한때의 실수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 없다는 온정주의가 깔려 있다. 대법원은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추행 혐의는) 직무에 관한 위법 행위가 아니다”며 징계를 사실상 포기했다. 징계가 없더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판검사의 변호사 등록을 제한하도록 변호사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비슷한 행태는 이어질 것이다. 교사의 경우 파면이나 해임 처분을 받았다면 학교로 되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2007년~2010년 6월 사이 성희롱·성폭력 등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교원은 53명이었다. 하지만 교직을 떠나야 하는 파면이나 해임 처분으로 퇴출된 교원은 19명에 그쳤다. 이런 관대한 처리가 반복되면서 일그러진 성윤리 의식이 확산된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존경 대상인 판사나 교사의 일탈과 복귀를 보면서 일반인의 죄의식도 무뎌지는 착시효과가 나타난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에선 1192명의 성추행범이 검거됐다. 2009년 671명에 비해 무려 77.6%나 증가한 수치다. 요란을 떤 ‘성추행과의 전쟁’이 그다지 약발이 크지 않다는 방증이다. 재기(再起)조차 꿈꿀 수 없는 가혹한 일벌백계가 능사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느슨한 잣대가 성추행 범죄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는 자문(自問)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