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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25> 위대한 캐디는 침묵할 줄 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8면

타이거 우즈의 가방을 13년 동안 멘 스티브 윌리엄스의 별명은 ‘Snarling’(으르렁거리는)이었다. 우즈가 경기 중 갤러리나 카메라 기자에게 방해받는다고 생각하면 윌리엄스는 카메라를 빼앗아 깨뜨리고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캐디에 관한 칼럼을 썼는데 다시 한번 쓰게 됐다. 우즈의 영원한 충견으로 남을 것 같던 윌리엄스가 우즈에게 으르렁거리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캐디는 약자다. 억울하게 잘리는 경우가 많다. 일부 에티켓 나쁜 국내 주말 골퍼가 캐디에게 그러는 것처럼 투어 프로도 자기 잘못을 캐디 탓으로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LPGA 투어에 한국 선수들이 대거 들어가기 전엔 레즈비언이 매우 많았는데,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말을 사석에서 했다가 선수 귀에 들어가 해고된 캐디도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많다. 무능하고 불성실한 캐디 때문에 선수가 커다란 피해를 보기도 한다. 최경주는 미국 진출 초창기엔 걸핏하면 지각을 하고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나오는 캐디 때문에 고생을 했다. 캐디 복이 가장 없는 선수라는 말도 들었다. 이언 우스남은 캐디백에 드라이버 2개를 넣고도 확인하지 않은 캐디의 실수 때문에 메이저 우승을 빼앗기기도 했다.

우즈와 윌리엄스 갈등의 발단은 우즈다. 유능하고 충직한 캐디인 윌리엄스를 2년간 방치했다. 우즈가 스캔들로, 무릎 수술로 칩거하는 동안 윌리엄스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우즈는 윌리엄스 해고를 발표하면서 “직접 만나 이제 그만 일하자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었던 것 같다. 윌리엄스는 “전화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사람들은 약자의 편이 되기 쉽다. 골퍼와 캐디가 시끄럽게 마찰을 일으켰을 경우 팬들은 캐디 쪽에 마음이 간다. 브리지스톤 대회 중 갤러리가 선수인 아담 스콧이 아니라 “스티비! 스티비!”를 외친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캐디의 중요한 역할을 잊었다. 골프 대회의 주인공은 선수다. 캐디는 음지에서 선수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보이지 않을수록 좋다. 스콧이 우승 퍼트를 넣은 후 윌리엄스가 타이거 우즈의 특허인 어퍼컷 세리머니를 한 것은 노련한 캐디답지 않았다.

마크 칼카베키아는 “캐디는 경기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지만 그들은 바람처럼 왔다 간다”고 했다. 캐디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투어 캐디는 점점 중요해진다. 그러나 세상 모든 직업에는 그에 맞는 역할이 있다. 선원이 선장을 밀어내고 키를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PGA 투어의 캐디인 브라이언 리츠케는 “캐디가 선수를 대신해 샷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선장을 하고 싶다면 골프가 아니라 그가 수준급 실력이라는 자동차 경주에 전념하는 것이 옳다.

윌리엄스는 스콧의 우승 직후 TV 카메라 앞에 나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국내에서 『캐디 시크릿』으로 번역된 『Inside stories from the caddies of the PGA Tour』의 저자인 캐디 그레그 마틴은 “뛰어난 캐디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밀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윌리엄스의 인터뷰 내용도 적절하지 않았다. 해야 했다면 “스콧이 훌륭했다”고 해야 옳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33년 캐디 생활 중 가장 위대한 한 주였고 최고의 우승이었다”는 말은 타이거 슬램 등 우즈의 업적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우즈의 대한 증오가 담긴 이 말은 정작 주인공인 스콧을 들러리로 만들었다.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 우즈와 함께 한 13번의 메이저 우승보다 비메이저, 즉 마이너 대회인 브리지스톤 우승이 정말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다. 만약 그가 이 우승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면 그는 선수를 위한 조연자가 아니라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리 트레비노는 “캐디는 66타를 치면 우리(선수와 캐디)가 쳤다고 하고, 77타를 치면 그 녀석(선수)이 쳤다고 하는 족속”이라고 했다. 폴 에이징어는 “이번에 윌리엄스는 선수가 잘 쳤는데 캐디가 잘 쳤다고 한 경우”라고 말했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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