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키신저와 스노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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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중반 베이징과 상하이의 외국인 사이에서는 마오쩌뚱의 공산당은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궤멸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부패 정권에 크게 실망한 젊은 항일 애국정년들 사이에는 마오쩌둥 일행이 10000km의 장정 끝에 섬서성의 옌안에 도착하였다는 소문도 파다하였다.

지금의 베이징대학 캠파스에 있었던 당시 옌칭(燕京)대학에서 저날리즘을 가르치고 있는 에드가 스노우에게 애국청년 제자들이 찾아 와서 마오쩌둥일행의 생존을 확인해 주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옌안행을 권하였다.

1936년 여름 스노우는 부인 헬렌 포스트와 함께 시안을 거쳐 비밀 루트로 옌안에 들어 갔다. 그는 6개월에 걸쳐 마오쩌둥 뿐만이 아니라 저우언라이(周恩來) 주더(朱德) 펑더화이(彭德懷) 린뱌오(林彪)등과 인터뷰를 하고 그들이 어떻게 국민당군의 포위를 뚫고 쓰촨성을 돌아 옌안에 도착하였는지를 밝혀냈다.

그가 1937년 초 발간한 책이 “중국의 붉은별(Red star over China)"였다. 그의 책은 세기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스노우가 세계인의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인물들을 찾아내어 부패정권에 항일을 주저하는 국민당의 대안으로 내 세웠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스노우부인은 조선인 독립운동가 김산(본명:장지락)을 인터뷰하여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아리랑(Song of Ariran)"을 발간하여 조선의 항일 독립운동을 소개하였다.

금년 미수(88세)의 키신저가 집필한 “중국에 대하여(On China)”라는 책이 화제다. 40년 전 1971년 7월 키신저 역시 죽(竹)의 장막 중국에 비밀리 잠입하여 마오를 만나고 저우언라이와 회담하여 중국을 서방세계에 끌어 내었다. 키신저보다 35년전 스노우가 한 것과 비슷한 역할이다. 키신저는 저날리스트는 아니지만 젊은시절 2차대전 중 독일 주둔 미군의 정보병으로 나치 독일을 점령한 미군의 탈(脫)나치 공작에 관여한 실무경력과 하바드 대학의 국제정치학자 출신으로 당시 중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 뚫고 있었다. 중국은 1960년대 말 구소련과의 국경분쟁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와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미국을 끌어드리려고 하였다. 키신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1971년 4월 중국의 나고야 세계탁구대회 출전과 미국선수들의 중국 초청등 이른바 핑퐁외교의 현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1972년 2월 닉슨 미국대통령의 방중은 이러한 키신저 외교의 결과였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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