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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금융투자회사 직접전용선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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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정치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자본시장 권력은 투자자에게서 나온다.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있는 불법행위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주식워런트(ELW) 관련 직접전용선(DMA) 문제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투자자 보호를 해치는 불법행위는 철저히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직접전용선 문제를 보면 두 가지 이슈가 혼재돼 논의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직접전용선 문제와 불법행위 문제는 구분해서 논의해야 한다. 직접전용선은 미국·영국·독일·호주·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직접전용선과 유사한 논리에 근거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활동과 밀접히 관련되기 때문이다.

 고급백화점에 가면 VIP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매출규모가 큰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전용 휴게실도 있다. 일반고객들은 한참을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늦게 온 고객이 먼저 전용선을 타고 휙 올라가 버린다. 보기에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백화점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적 기업이다. 이익 공헌도에 따라 고객을 차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본주의 경제논리다. 항공사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클래스 고객은 줄을 길게 서지 않는다. 좌석도 넓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먼저 내리고 짐도 먼저 나온다. 그렇지만 이를 갖고 왈가왈부하는 고객은 없다. 비즈니스석을 구매하지 않아도 특정 항공사를 자주 활용해 탑승 마일리지가 많으면 다른 탑승자가 받지 못하는 편익을 받는다. 비행사 이익에 공헌을 많이 했으니 그만큼 대우해 주는 것이다. 테니스 경기의 시드(seed) 배정도 비슷한 경우다. 세계 랭킹이 높으면 예선 한두 경기는 거치지 않고 직접 16강에 진입한다. 16강까지 전용선이 깔려 있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게 불리하지만 여기에 불만을 갖는 선수는 없다. 그 선수들이 그만큼 잘하고 관중에게 인기도 높고 대회의 가치증대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회사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주문을 내거나 빈번한 항공기 탑승처럼 빈번한 거래를 하는 투자자에게 전용선을 제공한다. 특히 대규모 거래를 수행하는 기관투자가 입장에선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수량을 주문할 수 있는 전용선이 필요하다. 다양성은 투자대상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문채널에도 필요하다. 투자자는 자신의 위험성향에 따라 주식·채권·펀드·부동산 등에 투자한다. 주문을 내는 수요자도 거래목적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을 원한다. 전 세계적으로 전통적 정규거래소 외에 대체거래시스템, 다크 풀(dark pool) 등 다양한 거래플랫폼이 등장해 경쟁하고 있다. 혁신적 거래플랫폼이 작동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직접전용선이다. 갈수록 다양화되고 세분화되는 거래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다양한 거래플랫폼과 주문집행방식이 필요하다.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직접전용선을 개발하는 것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국가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다.

 축구 역사상 오프사이드 규정만큼 자주 바뀐 규정도 없다. 축구의 오프사이드 규칙은 거래주문에서의 직접전용선 규정과 유사하다. 전진패스를 통한 골문으로의 직접적 접근방식을 규율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규정이 바뀔 때마다 심판과 선수들이 숙지하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둔다. 직접전용선에 대해선 과거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직접전용선을 법률적으로 정의하고 그 범위와 유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규정이 정해지면 철저히 따라야 하고,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한다. 법률적 판단에 앞서 근거규정을 먼저 구체화하는 것이 합리적 순서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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