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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⑪ 일꾼의 음식, 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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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텔레비전에 나온 집은 질색이야.”

  강원도 묵호 해안가에 있는 유명한 횟집 앞이었다. 친구는 손사래를 쳤다. 과연 간판의 이마에 이런 저런 텔레비전 프로그램 로고가 붙어 있었다. 그래도 봐줄 구석이 많은 집이었다. 옥호(屋號)도 내력 있게 점잖게 적혀 있었고, 밖으로 풍기는 ‘아우라’가 있었다. 날은 덥지 않았지만 한 접시 하고 가야 할 집 같았다. 친구의 등을 떠밀었다. 해안가 음식점답지 않게 와이셔츠들이 많은 걸 보니 지역에서 한가락 하는 명물집이 분명했다.

  “원래 지역에 가서 제대로 하는 식당을 찾으려면 군청이나 법원 앞으로 가라 그랬어. 그쪽 공무원들이 원래 입이 짧다잖아.”

  메뉴를 고심하자 뜨내기들을 흘긋 본 옆 탁자 손님이 무뚝뚝하게 한마디 하신다.

  “다른 철에는 복을 잘 끓이고, 요즘은 물회 드시오!”

  그래, 물회. 강원도에서 물회라면 오징어물회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물가자미로 만든 물회를 빼놓을 수 없다. 꼭 납작한 옛날 다리미처럼 생긴 가자미 껍질을 벗기고 굵은 뼈를 추려낸 다음 씩씩하게 썰어서 만드는 물회라니. 초고추장이 있으면 대충 넣어도 좋고, 더러 비법의 양념을 얹어내기도 한다. 이 횟집의 양념은 독특한 데가 있어 매운 듯 정갈하고, 웅숭깊은 맛을 낸다. 양념 속에 숙성시킨 과일의 향이 코끝에 스친다. 깔아 놓은 반찬도 좋고 잔가시가 씹히는 물가자미의 살이 달았다. 무엇보다 설탕과 빙초산 같은 피곤한 조미료를 조절해서 뒷맛이 개운했다. 설탕처럼 찐득거리는 더위가 그새 물러나 있었다. 근처 해수욕장은 제철인데도 한가로웠다. 기막힌 물회에 저 모래사장과 해수욕이라면, 숨겨 놓기엔 아까운 여름의 서정이었다.

  나의 물회 기억은 멀리 제주도로 달린다. 어민과 포구 노동자들이 더위를 쫓기 위해 만들어 먹었을 제주의 물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민중의 음식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원형이 짯짯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렇긴 하겠다. 궁중 물회니, 양반 물회니 하는 게 있었다면 소박하고 구수한 물회는 민중의 곁에서 떠나버렸을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제주 토박이를 만나서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제주 토속음식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할머니는 부끄럽게 웃었다. 제주는 먹을 게 없었다고, 토속음식이니 뭐 자랑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회 얘기를 꺼냈다. 자리돔이라도 얻으면 대충 토막쳐서 된장에 냉수 붓고 채소나 뜯어 넣고 먹었다고. 그러면서 할머니는 혼잣말하듯이 그랬다.

  “이젠 된장을 치면 누가 먹겠어.”

  양념이 다양하지 않은 섬 살림에 된장은 각별히 유용했다. 국에도 넣고, 물회에도 넣었다. 초고추장의 달고 새콤한 맛으로나 먹는 물회에 된장은 좀 뜻밖이었다. 그게 진짜 맛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혀를 간질이는 유행의 물회는 관광객용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고는 제주도를 무심히 걷던 어느 날, 꼭 그런 물회를 다시 만났다. 서귀포 옆 보목리 해녀들이 운영하는 바닷가 횟집에서였다. 손가락만 한 자리돔과 그때그때 잡히는 한치 따위를 넣어 물회를 말아주었다. 할머니의 가정식 물회는 아니었지만, 된장으로 맛을 내는 게 제주다웠다. 까칠한 자리돔의 가시를 혀끝으로 밀어내면서 살을 씹었다. 해녀의 손끝처럼 야무진 자리돔살이 고소하게 씹혔다. 외지인 티를 내느라고 젓가락으로 얌전하게 살점을 집는 모양을 보고 동네 노인이 시범을 보이신다. 일꾼이 먹는 물회라고, 숟가락으로 푹푹 퍼서 먹는 거라고.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왕년에 자리돔 배 좀 타신 훈장이다.

  지금쯤 묵호의 그 바다는 다시 파도가 치고, 보목 앞바다 문섬은 바다안개로 자욱할 것이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어디를 갈까, 이런 게 진짜 행복한 고민일 텐데.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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