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세계로 버스는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3년 6개월 전 나는 유서 깊은 보스턴 글로브紙 발행인 윌리엄 O. 테일러의 집무실을 찾았다. 사직의사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보스턴 글로브를 떠나 옛 친구의 남아도는 침실에서 인터넷 관련 업체를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15년 동안 직장인으로 충실히 생활한 끝에 바야흐로 기업 테두리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테일러가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치부할지, 몽상가나 단순한 바보로 취급할 지는 알 수 없었다. 10억 달러 상당의 기업을 일궈낸데다 내가 그때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구경제’의 본보기답게 당당했던 테일러는 책상 너머에서 눈빛을 번득이더니 조용한 어조로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아, 내가 자네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 입장이라면 좋겠다니…. 나는 무일푼에 MBA 학위는커녕 유산도 전혀 없지 않았는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몸으로 벌거벗은 채 신경제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만나고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았는가. 전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생경한 두려움, 열정, 창조, 희열, 그리고 절망, 용감한 동지들, 영광과 보상, 빠르게 진행되는 격동의 위대한 인간 드라마. 그것이 바로 삶이었다.

요즘 뉴욕 타임스紙의 견해는 다르다. 뉴욕 타임스 일요판은 3월 첫째주호 지면 대부분을 옛 기업의 향수로 채웠다. 상사가 없고 근로자에게는 아침에 일어나 뭔가 새로운 것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 말고 아무 보장도 없는 끔찍한 자유계약 경제의 원상복구를 외치는 것만 같았다.

미국의 유수 언론들은 디지털 시대를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회와 위기로 이뤄진 유동경제가 실리콘밸리 너머 일반사회에서도 수용될 때 그것이 향후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의문은 쌓여만 간다. 우리는 과연 그토록 위험한 모험을 감내할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는 쌓여 가는 의문들을 차례차례 해결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몇몇 의문은 주로 행동하는 자들에 의해 풀린다. 18세기 세련된 유럽 언론인들이 보안관도 없는 숲이나 광활한 대초원의 흙벽돌 집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미국인들에 대해 놀랍다는 듯 이야기하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라. 미국인들은 그렇게 거칠게 살았지만 번영했다.

인터넷 세계가 곧 유토피아는 아니다. 모두가 억만장자 기업인 반열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억만장자가 내일의 억만장자로 남는 것도 아니다. 나스닥 주가는 등락을 거듭할 것이다. 게다가 구세계를 떠나 신세계 항해에 나선 많은 벤처 기업인은 바다 한가운데서 배멀미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신세계 항해에 나섰던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돈 나오는 구멍은 없이 신용카드로 근근이 살아갈 때 오싹함을 느낄 것이다. 집을 날릴 판인데다 주변에서는 가정과 경력, 탄탄한 듯했던 모든 것이 엉망 아니냐고들 말할 때 앞이 캄캄하게 보일 수 있다. 그게 바로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출과 일몰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새 질서는 디지털 신세계처럼 우리들 한가운데서 계속 고개를 들 것이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희열 속에, 일부는 고통 속에 변해 가고 있다.

미국의 선조들은 굳은 각오 아래 대양을 건넜다. 이제 우리 차례다. 내가 뛰어들었던 조그만 침실의 꿈 ‘홈포트폴리오.컴’(HomePortfolio.com)號에 승선한 고객들은 지금 1백 명이 넘는다. 우리는 눈코 뜰 새 없이 인터넷 홈페이지 디자인 시장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의 꿈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다른 사람들 역시 항해중 펼쳐질 크고 작은 꿈들을 나름대로 안고 있다.

그렇다면 개척자인 독자는 지금 어떤 파도를 타고 있는가. 파도는 무엇이 돼 가고 있는가. 혹시 집에서 신문이나 읽을 생각인가. 미국은 자유국가다. 독자는 격동의 시대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가 아니면 내렸는가. 명심해야 할 것은 버스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홈포트폴리오.컴의 설립자이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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