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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지각 발매되는 브릿팝 앨범들

중앙일보

입력

브릿(Brit)이라는 어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릿팝이란 단어는 문자 그대로 영국의 팝 씬 전반을 통칭하는 말이다. 브릿팝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블러(BLUR)와 오아시스(OASIS)의 대결 구도가 본격적인 양상을 띠면서부터였다.

3집 〈Parklife〉('93)로 미국 시장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한 블러와 단시간 내에 가장 많이 팔린 데뷔작 〈Definitely Maybe〉('94)로 스타덤에 오른 오아시스의 접전은 브릿팝이란 새로운 현상을 폭발시켰고 이제 그것은 영국 팝 음악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97년, 브릿팝의 양대 산맥 블러와 오아시스의 앨범이 연이어 실패하고 테크노라는 강력한 첨병을 만나며 '브릿팝은 죽었다'라는 데이먼 앨번(Damon Alburn:블러의 보컬리스트)의 말처럼 브릿팝 열풍은 그 기세가 완전히 꺾이는 듯했다.

최근 오아시스의 신보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00)가 그 새로운 방향성으로 주목받고 발매를 목전에 둔 첨바웜바(CHUMBAWAMBA)의 신작이 기대되는 가운데 '전통'과 '진보'를 조합한 '포스트-브릿팝' 밴드들의 대거 등장으로 인해 새 천년을 여는 브릿팝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넘치는 활력으로 시작되고 있다.

브릿팝 밴드라면 블러와 오아시스가 전부인 걸로 알고 있지만 미국에 이어 팝 시장의 제 2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영국의 팝 씬 역시 나름대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그 동안 국내 팝 시장에서 크게 소외되었던 브릿팝 밴드들의 앨범이 대거 구제되어 눈길을 끈다.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의 최근작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98)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이 앨범은 지난 95년, 세계 10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기록될 기타리스트 리치 에드워즈(Richey Edwards)의 실종 후 나머지 멤버들이 밴드를 추스르고 발매한 두 번째 작품. 밴드 초창기 시절 신랄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하드한 펑크 사운드에 실어내며 '제 2의 섹스 피스톨즈'로 평가받았던 그들이 'The Everlasting'과 'If You Tolerate This Your Children Will Be Next' 등 어쿠스틱 사운드와 오케스트레이션의 애절한 선율로 물밀듯한 감동을 전한 이 앨범은 98년 최고의 앨범으로 추대되며 밴드에게 커다란 성공을 안겼다. 본국에서는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전작 〈Everything Must Go〉('96)의 국내 판매 부진을 이유로 그 동안 국내 발매가 유보되었었다.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 98년에 이어 '최우수 앨범상'과 '최우수 밴드상'을 휩쓴 2000년도 브릿 어워즈를 통해 스코틀랜드 출신의 4인조 밴드 트래비스(TRAVIS)는 블러와 오아시스의 뒤를 이어 브릿팝의 미래를 짊어질 확실한 대안임을 명백히 공표했다. 데뷔작 〈Good Feeling〉('97)을 통해 멜로디가 강한 기타 팝 사운드를 추구했던 이들은 듣기에 부담없는 서정적인 포크 록 사운드로 2집 를 포장했고, 이 앨범이 지난 해 영국에서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며 버브(THE VERVE)의 〈Urban Hymns〉('97)와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의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98)에 이어 서정적인 팝 사운드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수록곡 절반이 UK 싱글 차트 Top 20에 진입할 정도로 음악성과 상업성 모두를 인정받은 트래비스의 〈The Man Who〉는 데뷔작 〈Good Feeling〉과 나란히 라이선스반으로 발매되었다.

89년, 에코 앤 더 버니멘(ECHO & THE BUNNYMEN)과 슬리퍼(SLEEPER)의 프로듀서로 명성을 얻은 이언 브로디(Ian Broudie)가 원 맨 밴드 형식으로 출범시킨 라이트닝 시즈(THE LIGHTNING SEEDS)는 3집 〈Jollification〉('95)의 대성공을 발판으로 밴드의 진용을 갖추게 되었고 그런 후 발매한 첫 작품이 최근 라이선스반으로 구제된 〈Dizzy Heights〉('96)이다. 이언 브로디가 여전히 프로듀스와 작곡 모두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작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이 앨범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사운드적 시도는 밴드로서 작업했기에 가능했던 부분.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You Show Me' 등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사운드의 효과적인 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이언 브로디의 깨끗한 미성 속에 녹아든 산뜻하고 후레쉬한 느낌의 팝 송들을 만나볼 수 있다.

후버포닉(HOOVERPHONIC)은 벨기에 출신의 트립합/앰비언트 밴드지만 그들의 주활동 무대가 영국이라는 점에서 이 지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스틸링 뷰티(Stealing Beauty)〉 사운드트랙에 '2Wicky'를 헌정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이들은 언론의 극찬을 받은 두 장의 앨범 〈A New Stereophonic Sound Spectacular〉('96)와 〈Blue Wonder Power Milk〉('98)를 통해 아름답고도 환상적이며 신비스럽기까지한 일렉트릭 오케스트라 심포니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 바 있다. 최근에 복권된 앨범 〈Blue Wonder Power Milk〉는 지난 해 사라 브라이트만이 크게 히트시켰던 'Eden'과 댄서블한 록 트랙 'Lung' 등 전작보다는 훨씬 파피해진 사운드로 채워진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보컬리스트 기키 아르나에르트(Geike Arnaert)의 아름다운 허밍과 다채로운 색감의 전자음들이 오케스트레이션과 완벽한 조화를 구현하며 환상적인 퓨처리즘의 세계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버팔로 맨의 로고를 상징처럼 사용하는 밴드 '자미로꽈이'(JAMIROQUAI)는 소울과 디스코, 펑크와 하우스, 힙합과 애시드 재즈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르의 사운드를 손쉽게 주무르는 밴드의 핵 제이슨 케이(Jason Kay)의 경이로운 사운드 메이킹으로 주목받는 그룹.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날려버리는 댄서블한 사운드가 그들의 주무기이다. 70년대의 디스코 사운드를 90년대로 복원시켜 크게 호평 받은 앨범 〈Synkronized〉('99)에 이어 최근 국내 발매된 작품은 자미로꽈이의 두 번째 앨범 〈The Return Of The Space Cowboy〉('95). 마리화나 잎사귀가 등장한 첫 싱글 〈Space Cowboy〉의 뮤직 비디오가 MTV로부터 방영을 거부당하고 미국 발매반의 트랙 리스트가 바뀌는 등 수많은 화제를 낳은 이 앨범은 자미로꽈이의 존재를 영국 밖으로 알리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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