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공포’… 이탈리아·스페인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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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탈리아·스페인이 ‘7% 공포’에 떨고 있다. 7%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시장 금리)의 마지노선이다. 채권 값이 떨어져 금리가 7% 선을 넘어서면 두 나라는 빚을 감당할 수 없다. 월가 플레이어들이 흔히 말하는 ‘피애스코(Fiasco·파국)’가 엄습한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 모두 수익률이 7%를 넘어서자 끝내 굴복하고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채권시장에선 피애스코의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각각 6.227%와 6.388%까지 치솟았다. 두 나라가 유로화 단위로 채권을 발행한 199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두 나라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비상이다. 유럽연합(EU) 리더들은 그리스 2차 구제작전을 마친 지 10여 일 만에 채무위기가 다시 불거지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4일 유럽중앙은행(ECB)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 등 정책결정권자들이 비상 회동했다. 두 나라 채권을 사들여 수익률 상승을 억제하기로 했다. “EU 정상들과 재무장관들도 조만간 긴급 회동할 듯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탈리아·스페인의 위기는 그리스나 포르투갈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에서 이탈리아는 독일·프랑스 다음으로 덩치가 큰 경제권이다.

이어 스페인이 자리잡고 있다. 두 나라가 빌려다 쓴 액수도 크다. 올 6월 말 현재 이탈리아 공공부채는 1조1000억 달러(약 1155조원)다. 스페인은 8460억 달러를 끌어다 썼다. 유로존 전체 공공부채 가운데 이탈리아는 23%, 스페인은 9%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각각 4%와 1.9%밖에 되지 않는다.

 두 나라 재정 상태가 생각만큼 나쁜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재정적자 비율이 이탈리아는 4% 정도고 스페인은 9% 수준이다. 10%를 훌쩍 뛰어넘은 그리스나 포르투갈보다 훨씬 양호한 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탈리아·스페인이 그리스보다 사정이 좋은데도 시장 참여자들이 투매하고 있다”며 “시장 참여자들의 두려움 자체가 파국의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 집행위원장인 조제 마누엘 바호주는 최근 이탈리아·스페인 국채 투매 현상을 ‘시장의 테스트’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에 시장이 시험하는 것은 EU의 구제 능력”이라고 말했다. EU는 지난달 21일 구제금융으로 6600억 달러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스페인 빚 규모(1조9000여억 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시장이 바로 이 틈을 노려 두 나라 채권을 공격하고 있는 듯하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은 내년 1월까지 역내 은행들에 필요한 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한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금융시장에서 최근 불거지고 있는 문제들을 고려해 은행에 대한 긴급 유동성 지원과 지원된 자금 만기를 6개월로 연장하는 조치(LTRO)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강남규·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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