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헬기로 카이로 압송 … 무바라크 “나는 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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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파라오’로 불렸던 이집트 독재자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30년 동안 이집트를 철권통치했던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83) 전 대통령이 하야 6개월 만인 3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법정이었다. 그는 흰색 옷을 입고 간이침대에 실려 카이로 외곽의 경찰학교에 마련된 특별재판소에 들어섰다. 무바라크는 안전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새장 모양의 간이철장 안에서 처음엔 눈만 끔뻑이며 자신에게 쏠린 관심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다 재판이 시작되자 “나에 대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나는 죄가 없다”고만 말했다.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아랍권에서 국가 최고통치자가 법정에 서게 된 것은 무바라크가 처음이다.

 미 CNN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현지시간), 특별법정은 무바라크의 등장으로 크게 술렁였다. 이미 법정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던 방청객의 시선은 일제히 무바라크에게 쏠렸다. 세계 주요 방송들과 이집트 국영 TV 등은 독재자의 마지막 행적을 기록하기 위해 이날 법정 상황을 생중계했다.

 지난 2월 11일 퇴진한 무바라크는 홍해 연안 휴양지인 샤름 엘셰이크 병원에 입원한 이후 공개 석상에 일절 나서지 않았다. 무바라크 측은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에도 출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무바라크의 법정 출두는 이집트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동안 반무바라크 시위대는 “정부가 무바라크 처리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강력 대처를 요구해 왔다. 이 같은 비난이 고조되자 이집트 정부는 이날 오전 샤름 엘셰이크 병원에 입원해 있던 무바라크를 군용 헬리콥터에 태워 카이로로 압송했다. 시민혁명으로 퇴진한 무바라크는 지난 1월 25일부터 18일간 이어진 시위 때 유혈진압 명령을 내려 시민 840여 명을 숨지게 하고 6000여 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임기간 중 부정축재를 한 혐의도 추가됐다.



그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법정에는 무바라크 외에 그의 두 아들인 알라와 가말, 그리고 하비브 엘아들리 전 내무장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바라크의 가까운 친척과 정부 관계자, 변호사도 출두했다.

재판부는 재판이 끝난 뒤 무바라크와 두 아들이 15일 법정에 선다고 밝혔다. 또 이 기간 동안 무바라크가 샤름 엘셰이크가 아닌 카이로 인근 군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으라고 명령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바라크 측은 이날 법정에서 “무력을 쓰지 말라고 경찰에 분명히 명령했다”며 “경찰에 거리 질서를 회복하라고 요구했으나 그들은 지시받은 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최익재·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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