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 회장 "나는 꾸물거리지 않는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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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인사파동후 24일 현대증권 본사로 첫출근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고려산업개발에 가서 일하라는 지시는 받은 적 없고 아직 정식인사도 나지 않았다”며 "모든 일은 순리대로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금융감독위원회의 3개월 업무정지처분이 풀린 뒤 이날 아침 첫 임원회의를 주재한 뒤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 "내 책상은 항상 깨끗하다. 무슨 일이든지 나는 지체하고 꾸물거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현재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이 회장은 과거 정주영 명예회장 비서실에 근무하다 현장으로 옮겼던 시절을 회상하며 “명예회장은 지시를 받으면 바로 움직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뒤로 나는 아침에 인사발령을 받으면 오후에 임지로 떠나곤 했다”고 말했다.

지난 주 인사파동에 대한 질문에 이 회장은 "나는 오너 아닌 전문 경영인이고 인사는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주관하고 발표하게 돼있다”며 "어떤 계열사에서 내정 사항을 미리 흘린 모양인데 나는 아직 통보받은 적 없으며 이는 그룹에 확인해 보면알 것"이라고 말해 명백한 입장표명을 피한 채 우회적인 답변으로 대신했다.

중국출장이 정 명예회장이나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항명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항명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회장은 “정몽헌 회장은 현재 미국 출장중이고 나는 중국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러 가 상면하지 못했으며 전화연락도 하지 않았다”며 항간에 나돈 접촉설을 부인했다.

귀국후 정 명예회장과 만났느냐는 질문에는 "항상 본사출근 전 계동에 들르기 때문에 명예회장은 수시로 뵙고 있다”며 "다음 주에도 또 뵙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한편 현대증권 신임 사장으로 내정된 노정익 현대캐피탈 사장에 대해 “오래 종합기획실에 근무한 유능한 인물이나 아직 금융쪽 필드경험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또 "바이코리아펀드를 통해 은행밖에 모르던 국민들의 속성을 바꿔놓은 것은 큰 업적이자 보람”이라며 "앞으로도 증시는 더 크게 발전할 것이고 이는 서민층을 중산층으로 육성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대증권은 유능한 인물이 많고 국제부문에서 확고한 1위를 차지하는 등 5년내에 미국의 골드만삭스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는 이미 지났지만 내년부터는 항시적인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경영해 나간다는 것이 회사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회장은 향후 거취나 심경 등에 대한 질문에는 짧게 대답한 뒤 대부분의 시간을 향후 경영방침이나 과거 이야기에 할애했으며 오너들의 결정에 대해서는 일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한편 노치용 현대증권 이사는 "모든 일은 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하는 데 그룹PR본부 등이 너무 한 쪽 입장만을 키운 셈"이라며 "언론보도가 너무 앞서가고 추측이 많아 마치 현대그룹이 큰 내부갈등에 휩싸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언론보도에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 jsking@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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