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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범벅 아내 죽어가는데 … ” 70대 오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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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인하대의 눈물 … 본관에 합동분향소 28일 인천시 인하대 본관에 마련된, 춘천 산사태로 희생된 학생들의 합동분향소에서 학생들이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6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 부부 5쌍의 우애가 산사태로 산산조각 났다. 염모(70)씨 부부 등 5쌍이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계곡으로 부부 동반 물놀이를 온 것은 지난 27일 오전. 이들은 매달 부부 동반 모임을 한다. 이들은 낮에 계곡에서 논 뒤 저녁에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8시30분쯤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시뻘건 흙더미와 소나무가 민박집 벽을 뚫고 들이닥쳤다. 피할 새도 없이 모두 흙더미에 묻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염씨 등 7명은 흙더미를 비집고 겨우 빠져나왔다.

 그러나 염씨의 아내 문모(68·여)씨 등 3명의 여성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구해 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맨손으로 소나무를 걷어 내고 흙을 파내 이들을 꺼냈다. 펜션은 전쟁터를 방불케 해 아픈 이가 누울 공간조차 없었다. 문씨는 “소나무가 가슴을 때린 것 같다. 너무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염씨는 흙으로 범벅이 된 아내의 얼굴을 닦아 내고 조심스레 물을 먹였지만 아내는 이마저도 피와 함께 토해 냈다.

설상가상으로 갖고 간 휴대전화는 모두 먹통이었다. 119에 신고할 길이 없었다. 민박집과 주변은 전기가 끊겨 칠흑같이 어두웠다. 주변 지리에 익숙한 민박집 주인이 아랫마을로 뛰어 내려가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그러나 민박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흘러내린 흙더미에 덮인 탓에 119구조대도 발이 묶였다. 사고 발생 6시간이 지난 다음 날 오전 2시30분쯤 돼서야 구조대가 도착했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문씨 등 3명이 이미 숨진 뒤였다. 염씨는 죽어 가는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사흘간 폭우로 경기도에서는 26명이 숨지고 12명이 실종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만 포천·동두천·파주 등 5개 도시 8곳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26일부터 28일까지 5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인명 피해가 많이 난 곳은 포천으로 3곳에서 6명이 숨졌다. 27일 오후 11시30분쯤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유출된 토사가 3층짜리 빌라를 덮쳤다. 1층에 살던 정모(26)씨는 현관 출입구에서 10m가량 떨어진 도로까지 튕겨 나가 목숨을 건졌다. 정씨는 그러나 아내와 어린 아들 둘이 보이지 않자 흙더미로 뛰어들었다. 흙더미에 깔린 3개월 된 아들을 찾아내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끝내 아기는 숨지고 말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과 대민지원 장병이 정씨의 아내 위모(26)씨와 큰아들(4) 수색작업에 전력을 다했다. 위씨는 남편의 애끓는 바람에도 사고 10시간 만인 28일 오전 8시쯤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어 오후 1시10분에 큰아들의 시신도 흙더미 속에서 찾아냈다. 중상을 입은 정씨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이웃 주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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