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편지 <사슴이 있는 쪽으로>

중앙일보

입력

새벽에 일어나 찬 물을 마시고 사슴을 보러 갑니다. 여기서 차를 몰고 가면 한 시간이면 그가 있는 곳에 닿을 수 있습니다.

꿈에 또 그가 우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 곰인형처럼 새벽이 될 때까지 방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봄 밤에 울고 있는 사슴. 그는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오래 전에 나를 버리고 떠나갔던 여자가 어느 날 오후에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하듯이 사슴은 그런 식으로 나를 찾아오곤 합니다.

어둑한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원당을 지나 광탄을 지나 기산으로 갑니다. 그곳에 가면 저수지 옆에 누군가 별장을 지어놓고 사슴을 키웁니다. 지난 여름 사슴이 갇혀 있는 우리 앞에는 들장미가 피어 있었습니다. 늦가을 유성우가 떨어지던 밤엔 장미 대신 마른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날 밤도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다 사슴이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홉살 땐가 할머니의 손에 잡혀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을 찾아가던 길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어느 집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뿔달린 어여쁜 짐승을 보았습니다. 몸엔 하얀 반점이 드문드문 찍혀 있었습니다.

그 찰나의 놀랍고도 황홀하던 기억. 몇 백년 벼려온 칼에 온몸이 두 쪽으로 깨끗하게 갈라지던 느낌. 햇빛 속으로 맑게 퍼져나가던 내 피의 환영. 까닭을 알 수 없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오르던 최초의 슬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까맣게 맑던 그 눈빛. 내 유년의 한때는 영원히 그 순간에 고정돼 있습니다. 실핀에 꽂혀 푸른 벽에 두 날개를 펴고 영원히 박혀 있는 나비처럼.

사슴을 보고 와서 저는 며칠 동안 어두운 방 안에 무거운 이불을 쓰고 누워 앓았습니다. 그러다 정신이 나갔는지 닭을 키우는 우리 안에 들어가 밤새 울고 있었다는 얘기를 훗날 할머니에게서 전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사슴을 본 건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의 일입니다.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에 가서 본 게 아니었습니다. 곤궁한 사춘기의 어느 날 시골 버스를 타고 먼 친척집에 심부름을 다녀오던 저녁, 아마 봄이었을 겁니다, 탱자나무들이 높게 울타리를 친 어느 집 마당에서 그 짐승이 외롭게 서 있는 걸 우연히 보았던 것입니다. 그때 또 그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급히 버스를 세우고 낯모르는 동네에 혼자 내렸습니다.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탱자나무 울타리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이나 사슴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을 망설이다 사슴은 내가 있는 곳으로 쭈뼛쭈뼛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풀을 받아 먹었습니다. 따뜻하고 큰 혀로 내 손을 핥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감촉이 아직도 오른손 바닥에 화인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후 몇 번 더 사슴과 만났습니다. 한번은 등산 배낭을 메고 산길을 넘다 약초 재배를 하는 움막에서 한 농부가 키우는 사슴을 보았습니다. 그때도 저녁이었고 산자락에 노을이 붉게 걸려 있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저는 무리를 지어 있는 사슴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딱 한 마리였던 것입니다.

내게 그 짐승은 영원한 수수께끼나 신화처럼 생각됩니다. 가끔은 아름다운 남자나 여자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사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몸은 대지(땅)을 뜻하고 뿔은 숲(나무)를 뜻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슴의 뿔은 나무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은 다음 빠진 다고 합니다. 저도 이끼가 퍼렇게 낀 뿔을 본 적이 있습니다.

탈각한 뿔은 스님들이 주워 예불 때 운판을 치는데 쓴다고 합니다. 더할 수 없이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절에서 목어를 때리는 일이 물속에 있는 고기들의 복을 비는 일이라면, 운판은 하늘에 나는 새들의 창생을 비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무려나 그의 몸은 풍요의 상징이며 곧 움직이는 우주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라 사람들은 왕관을 만들 때 사슴 뿔을 흉내내 보관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사슴은 왕이고 왕은 또 사슴이었던 것입니다. 눈여겨보면 경주 어느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 년에 두세 번 그의 꿈을 꿉니다. 그런데 언제나 비내리는 저녁이나 고요한 새벽에 혼자 울고 있는 사슴. 그는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더할 수 없이 아름답기 때문에? 단 한번 울고 죽는다는 백조처럼 그도 이 지상에서 제 아름다움의 형벌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도 어여쁜 것들은 그러하듯이.

유년의 그날 그와 눈빛이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의 자태를 마음에 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의 뿔을 벗겨 쓰는 꿈은 꾸지 말았어야 했는데. 밤늦게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던 스무살의 어느 저녁,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검은 나무들 사이로 내비치던 그의 희미한 모습. 그렇듯 생은 밤기차를 탄 것처럼 언제나 무연히 지나가고 결코 거머쥘 수 없는 꿈처럼 그는 아주 가끔 내 눈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를 때 벼락을 맞듯 그의 향기로운 관에 사로잡혔던 유년. 스스로 마음에 겨워 단 한번 울어보지 못한 이 덧없는 생의 울울. 그 어린 날 세상은 단 한번만으로 너무나 완전하게 아름다웠고 그 후 다시는 그런 다른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방콕에서 부친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곧 우기가 다가와 밤마다 또 지루한 비가 내리겠군요. 서울에 닿으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사슴이 있는 곳으로 함께 하룻저녁의 여행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줄입니다. 남루하고 힘든 하루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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