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세단 … 스포츠 카 … 하이브리드 … “변신을 즐겨라” SUV ‘폭풍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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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일반적으로 ‘험로 주파성이 뛰어난 차’를 일컫는다. 대개 차체 바닥을 껑충 띄우고 4륜구동 장치를 얹는다. 그런데 SUV는 ‘Sport Utility Vehicle’의 약자로 ‘레저 활동을 위한 자동차’를 뜻한다. 다양한 굴림 방식과 스타일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인 셈이다. SUV는 미 육군의 군용차가 시발점이다. 이후 반세기 만에 가장 성공한 자동차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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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SUV가 진화하면서 달렸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70년대엔 오일 파동, 21세기 들어선 전복위험성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부각돼 몇 차례나 벼랑 끝에 섰다. 그러나 SUV는 위기를 맞을 때마다 오히려 진화에 가속을 붙였다. 기술로 걸림돌을 넘어서는 한편 저만의 개성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SUV는 이제 스포츠카와 고급 세단·하이브리드 차의 영역까지 넘보게 됐다.

 SUV는 오랜 역사를 뽐내는 ‘정통파’와 뒤늦게 뛰어든 ‘새내기’로 나뉜다. 정통파의 대표는 지프다. 41년 미 육군의 군용차 입찰을 거머쥔 SUV의 원조답게 아직도 지프는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랭글러가 좋은 예다.

프레임에 차체를 얹는 방식을 고집한다. 최근 실내를 산뜻하게 꾸미고 문 네 개짜리 랭글러 언리미티드를 내놓는 등 전통을 파괴하지 않는 ‘최소한의 타협’에 나섰다.

랜드로버도 창사 이래 SUV의 한 우물을 파온 터줏대감이다. 랜드로버는 랭글러와 달리 70년대부터 ‘고급화’로 승부를 걸었다. 최고급 세단 오너가 위화감 없이 몰 수 있는 SUV를 표방했다. 최고급 차종인 레인지로버의 실내는 시야가 높을 뿐 여느 브랜드의 기함이 부럽지 않다. 호화 요트에서 영감을 받아 꾸몄다. SUV 전문 브랜드답게 험로 성능은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정통파’와 ‘새내기’의 애매한 경계에 서 있다. 79년 G클래스를 내놨다. 그런데 현대적 의미의 SUV는 97년 선보인 M클래스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세단과 안전기술에서는 차별이 없다. 게다가 같은 엔진의 벤츠 가운데 가장 저렴해서 인기다.

 BMW는 벤츠보다 한 발 늦게 SUV에 손을 댔다. 99년 내놓은 X5가 시작이다. 하지만 후발 주자의 뒷심은 무서웠다. X1, X3, X6을 내세워 공격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BMW는 이들을 ‘스포츠 액티비티 차량(SAV)’이라고 정의한다. 체격은 우람하되 운전 재미는 납작한 BMW와 다름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운전하는 ‘손맛’이라면 포르셰 카이엔도 빠질 수 없다. 카이엔은 오늘날 포르셰의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자리매김했다. 카이엔의 인기 비결은 스포츠카 뺨치는 운전감각에 있다. 자로 잰 듯 정밀한 핸들링으로 SUV를 가족과 함께 즐기는 스포츠카로 탈바꿈시켰다.

 폴크스바겐 투아렉은 카이엔과 뼈대를 나눈 사이다. 아우디 Q7과는 친척뻘이다. 포르셰와 폴크스바겐그룹의 공동 기획으로 탄생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아우디는 Q7을 3열 시트까지 갖춘 7인승으로 특화했다. 성능을 강조한 카이엔과 덩치를 키운 Q7 사이에서 투아렉은 치우침 없이 골고루 뛰어난 ‘팔방미인’ 성격으로 차별을 꿈꿨다.

 최근 국내에 출시된 신형 투아렉은 덩치와 강성을 이전보다 키웠지만 무게는 오히려 줄였다. 또한 마른땅과 진땅을 가리지 않고 막강한 성능을 낸다. 투아렉 V8 4.2 TDI(터보디젤 직분사)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을 5.8초 만에 끊는다. V6 3.0 TDI는 정차 때 시동 끄는 기능과 에너지 회생 장치를 갖춰 공인연비가 11.6㎞/L에 달한다. 해외엔 하이브리드 모델도 판매 중이다.

 SUV는 본고장 격인 미국에서 미니밴으로 자녀를 실어 나르던 여성 오너의 마음을 사로잡아 유행의 발판을 마련했다. 오늘날 SUV는 다양한 크기와 가격대, 성격으로 세분화하는 추세다. 보다 정확한 수요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SUV가 거침없이 영역을 넓혀가며 왜건·미니밴 등 다른 장르와의 경계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김기범 중앙SUNDAY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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