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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복 차림 “안심하라” 아이들 모은 뒤 M16 난사 … 우퇴야 섬 105분간 인간 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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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우퇴야 섬 테러 현장에서 구조된 여성이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오고 있다. 집권 노동당 청소년 캠프가 열린 우퇴야 섬에서는 이날 총격 테러로 최소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퇴야 섬 AFP=연합뉴스]


노르웨이 사상 최악의 테러를 일으킨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이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며 “잔혹했지만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브레이빅은 자신이 쓴 ‘2083-유럽독립선언문’에서 “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목격된 가장 거대한 괴물로 기록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AP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20대 초반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된 것 외엔 별다른 범죄 이력을 갖고 있지 않다. 당국에 총기 몇 정을 등록하긴 했지만 테러단체나 극우단체와의 연계도 드러나지 않았다.

우퇴야에서 22일(현지시간) 테러범으로 추정되는 인물(빨간 원)이 총기 난사 현장을 서성거리고 있다. [우퇴야 AP=연합뉴스]

 브레이빅은 한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오슬로의 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이복누이와 함께 살았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가 평범하고 수줍음 많은 젊은이로 보였고 보수적 기독교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를 졸업한 뒤엔 아메리칸 인터콘티넨털 대학에서 ‘중소기업운영학’ 과정을 온라인 강좌로 수강했다. 2009년 오슬로 교외에 농산물 재배업체 ‘지오팜’을 설립해 운영해 왔다. 그의 선언문에는 “(농장 설립은) 폭발물이나 비료 같은 폭발물 재료를 구입하는 것과 관련해 체포될 경우를 대비해 신뢰할 만한 위장막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였다”고 적혀 있다. 브레이빅은 지난 5월 초 질산비료 6t을 구입했다고 23일(현지시간) AFP통신이 보도했다. 질산비료와 디젤유를 섞어 이번 테러에 사용된 비료폭탄을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레이빅은 우퇴야섬에서 자동소총과 산탄총, 글록 권총을 난사했다고 영국 일간 선 등이 전했다. 한 목격자는 “그는 M16 소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테러범이 난사한 글록 권총은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범인 조승희가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웃·친구와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브레이빅은 ‘마마보이’로 어머니 외에 다른 세상과는 오랜 기간 담을 쌓고 지냈다”며 “청소년 캠프를 범행 대상으로 고른 이유가 10대 때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또래들과의 교류를 동경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24일 노르웨이 구조대원들이 보트를 타고 총격 테러 사건이 벌어졌던 우퇴야섬 튀리피오르덴 호수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퇴야 로이터=뉴시스]


그는 한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언론이 이슬람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터트렸다. 또 다른 게시물에선 “오늘날의 정치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간의 싸움”이라며 자신은 민족주의자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신문은 브레이빅이 백인우월주의를 신봉하는 ‘네오나치주의자’로 보인다고 전했다. 비밀 결사조직인 ‘프리메이슨’ 소속이라는 주장도 있다.

  브레이빅은 이슬람 비판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한국과 일본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문화적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라며 “이들 국가를 유럽의 롤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페이스북 자기소개란에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 클래식 음악, 노르웨이 레지스탕스 영웅 막스 마누스를 좋아한다”고 적었다. 페이스북에는 보디빌딩·사냥·온라인게임 등 자신의 취미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왔다.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겨 하고, 연쇄살인범을 다룬 인기 미국드라마 ‘덱스터’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말 어머니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떠나 농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수사 당국은 “폭발물 제조에 사용한 비료를 의심받지 않고 손에 넣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행 6일 전에는 트위터 계정을 개설해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이 이익만 좇는 10만 명의 힘과 맞먹는다”는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인용한 의미심장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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