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집 장만도 서바이벌? MBC ‘집드림’ 잔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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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임주리 기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퀴즈부터 풀어보자.

 여기 네 가족이 있다. 당신은 이 중 한 가족만 골라 상을 줄 수 있다.

 ① 목숨을 걸고 아이들과 함께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 가족’

 ② 어려운 형편에도 방글라데시의 한 소녀를 입양해 키우는 ‘입양 가족’

 ③ 이혼 후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처제와 아이들을 좁은 집에 받아들인 ‘한 지붕 두 자매 가족’

 ④ 아픈 부모님을 돌보느라 집까지 팔았다가, 순대장사로 재기하려는 ‘순대 아빠 가족’

 모두 형편은 어렵고 집 한 채 가지는 게 꿈이다. 상으로 주어지는 건 바로 ‘집’. 그 누가 마음 편히 답을 고를 수 있을까.

어려운 사람들의 집 장만 꿈을 경쟁에 부쳐 비판을 받고 있는 MBC ‘집드림’.

 “주말 오후에 볼 만한 공익 예능을 만들겠다”며 10일 첫 선을 보인 MBC ‘우리들의 일밤’의 새 코너 ‘집드림’이 논란에 휩싸였다. 2400여 명의 무주택 신청가족 중 열여섯 가족을 선발, 퀴즈 토너먼트를 통해 우승한 최후의 가족에게 3층 규모의 단독주택을 준다. 제작진은 “집에 대한 개념을 행복하게 바꾸기 위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첫 회부터 쏟아진 시청자들의 비난은 혹평을 넘어 분노에 가깝다. 집이 없는 시청자들에게 심한 박탈감을 주는 것은 물론, 앞서 말한 잔인한 퀴즈를 모든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 가족을 응원할 수도, 저 가족을 응원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이쪽 편을 들자니 저쪽의 눈물이 생생히 그려진다. 주택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보는 이는 괴로운데, 어째서 ‘공익’이며 ‘예능’이냐는 얘기다.

 출제되는 퀴즈가 오로지 운에 달렸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네덜란드의 한 가정을 찾아 그 집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무엇인지, 창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등을 맞추는 문제는 실소를 자아냈다.

 결과는 시청률이 보여준다. 1회 6%대를 기록했고, 2회 때는 더 못 미친 4%대가 나왔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 “공짜로 집 주는 ‘좋은’ 방송이니까 수혜자가 될 수도 있는 가족의 가정사 정도는 방송에서 마음대로 써먹어도 된다는 건가. 게다가 열심히 살아온 분들 데리고 운발인 퀴즈나 풀게 하니 분통이 터진다”는 식의 글이 올라온다.

 TV만 틀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시대다. 1등만 조명되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가운데 “일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며 ‘집드림’이 등장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친 이들은 경쟁을 거치는 동안 내공이라도 쌓으며 성장할 수 있다. 집드림을 거친 가족들에게 쌓이는 내공은 무얼까. 눈 앞에 왔다가 사라진 행운을 지켜보며 ‘절망내공’이라도 쌓으라는 건가.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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