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엄홍길 LA 강연회 성황

미주중앙

입력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모두 오른 엄홍길씨가 산행을 통해 체험한 극기 정신과 도전 정신을 강연하고 있다. 중앙일보 후원으로 16일 윌셔 아트센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는 에베레스트부터 K2까지 14좌 등정의 과정이 담긴 DVD 상영도 있었다. 김상진기자


히말라야의 8000m급 16좌에 모두 오른 세계 최초의 산악인 엄홍길(50). 엄씨가 16일 LA한인타운의 윌셔아트센터에서 '극한의 리더십' 강연을 했다. '엄홍길 휴먼재단의 LA지부 창립 총회'를 겸한 자리였다.

강연에 앞서서는 '엄홍길 휴먼재단' LA지부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 강석희 어바인 시장을 비롯해 이창엽.이대형 LA지부 공동대표 등 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중앙일보와 해피빌리지 다비치안경 소향 에베레스트가 행사를 공동 후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100여 명의 한인들은 엄씨가 8000m급 고봉 등정의 극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정상에 우뚝 서게 된 과정을 들으면서 감동했다. 엄씨가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게 한 것은 '산과 동료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도전정신'이었다.

#. 내게 산은 운명 같은 곳

경상남도 고성 출신으로 세 살 때 부모가 원동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산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산 아래 학교까지 가려면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다. "정말 그 때는 산도 싫고 부모님도 원망스러웠어요." 어린 엄홍길에게 산은 그저 불만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벽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산에 대해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높은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고 놀면서 팔근육이 발달해 있던 터라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암벽 클라이밍을 배우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그렇게 등산을 시작한 후로 한국에 있는 모든 산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2000m도 채 안되는 한국의 산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좀 더 높고 어려운 곳 그런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그게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8848m)였습니다."

#. 도전과 연속된 실패

생애 첫 에베레스트 등반은 깨끗한 패배였다. "8000m급 산은 상상을 초월했어요." 이듬해 재도전에 나섰지만 에베레스트는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함께 등반하던 셀파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긴 틈)에 빠져 죽었어요.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하면서 다시는 산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나 이미 산은 엄씨와 떼래야 뗄 수 없는 분신과도 같았다. "다시는 (산에) 안 간다 안 간다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나중에 가니까 '안'자는 사라지고 간다 간다가 되더라구요." 마침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원하며 떠난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세 번째 도전만에 정상에 올랐다. "산은 내가 오르는 게 아니고 그 산이 나를 받아줘야 하는 거였어요."

#. 4전5기 '안나푸르나'

가장 힘겨웠던 곳은 안나푸르나(8091m)였다. "세 번째는 맨 앞에 가던 셀파가 크레바스에 빠져 죽었어요. 원래는 맨 뒤에 왔었는데 자리를 바꿔 가자고 한 지 30분도 안돼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네 번째는 교만이 화를 불렀죠. 정상을 앞둔 7600m 고지에서 '아무 것도 아니었는 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고가 터졌어요." 절벽을 오르던 셀파가 추락하면서 안전밧줄이 엄씨의 다리를 낚아챘다. 10여m 아래로 추락했고 부상이 심해 정상도전은 불가능했다.

180도로 완전히 틀어진 다리를 이끌고 깎아 지를 듯한 절벽을 7시간 이상 기어서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수술을 해도 다시는 산에 갈 수 없다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다. 수술 10개월 만에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았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다리 통증과 싸우며 1999년 다섯 번째 만에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하산하다가 다시 크레바스에 셀파를 잃는 아픔도 있었다. "이러니 제가 산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다. 3000m 아래로 추락하는 동료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2007년 5월 로체샤르를 끝으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게 된 엄씨가 이듬해 '휴먼재단'을 설립한 것도 산과 셀파 동료들에 진 빗을 갚겠다는 뜻에서 시작됐다. 현재 히말라야 오지마을에 2개 초등학교를 세웠고 16개 학교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위대한 일 치고 열정 없이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내 삶이 순탄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엄홍길은 없을 것입니다. 위기보다 더 좋은 찬스는 없습니다. 동료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고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여러분도 목표를 세워 힘차게 도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김문호 기자 moonki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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