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주제 3부작 완결편 내놓은 변영주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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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호남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김윤심씨. 소학교를 졸업한 43년 봄, 집 밖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다 열세 살 나이에 중국 하얼빈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몇 번의 탈출 시도 끝에 45년 4월 고향으로 돌아온 김씨. '다시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둘러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혼례를 올렸다.

"넉달만 참았으면 해방이 되는 건데…" . 운명을 원망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마음을 다잡고 살기로 하고 첫 딸을 낳았다. 그러나 위안소에서 얻은 병(매독)때문에 딸은 청각장애자로 태어났다. 남편이 자신의 과거를 알까 무서웠던 김씨는 포대기에 딸을 싸안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이후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며 딸을 키워낸 김씨. 그녀 집에는 유달리 꽃이 많다. "꽃이 좋지, 꽃은 말없이 사람을 좋아하잖아" .

고통에 찬 세월을 견뎌 내기위해 써 내려온 김씨의 일기장은 역사의 폭력에 망가진 한 여성의 상흔들로 가득차 있다. '무정하고 악랄한 일본군, 평생을 두고 못 잊을 과거, 다시는 이런 전쟁이 없길 빈다' .

변영주(34) 감독의 '숨결' 은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3부작의 완결편이다.

'숨결' 에는 김씨 외에도 친구들과 나물캐러 갔다 취직시켜 준다는 꾐에 빠져 대만의 위안소로 간 이, 위안소에서당한 폭행과 정신적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린 이 등의 사연이 담겨 있다.

7년에 걸쳐 완성된 '낮은 목소리' 연작에서 변감독은 민족주의나 제국주의 같은 '거대담론' 은 배제했다.

자신의 체험을 말하길 꺼리고 두려워하는 위안부들로 하여금 스스로 증언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남성 위주의 역사 해석으로부터 여성의 역사를 구해내겠다는 것이 감독이 노리는 바다.

이 의도는 서두에 인용한 김씨 모녀의 증언 장면에서 극적으로 구현된다(이 장면을 국립영상원 김소영 교수는 '다큐멘터리의 승리' 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언어화를 거부하는 경험을 언어화' 하겠다는 감독의 집착은 영화를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몰고 간 감이 있다.

종군위안부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충돌하고 갈등하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담겨지지 못한 것이다.

이 다성성(多聲性)의 부재때문에 현실 속에서 여전히 해결을 기다리고 있는 위안부 문제가 영화에서는 다 해소된 듯한 느낌을 준다( '숨결' 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인 김씨 모녀의 증언 뒤에 오는 일종의 '해방감' 이나 '허탈감' 의 정체는 이것이 아닐까). 다른 루트나 실마리를 만들어놓지 않음으로써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닫힌 영화' 가 되고 말았다.

어쨌든 '낮은 목소리' 연작은 그것이 거둔 가능성과 함께 그 한계 조차도 뒤에 올 이들이 줄곧 참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일천한 한국 다큐멘터리사(史)에서 중요한 성과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트선재센터(서울), 시네마테크(부산)에서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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