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첫 ERP도입 이응복 (주)이천일·아울렛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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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은 할인점보다 싸게, 서비스는 백화점보다 낫게-.

이랜드 그룹 계열 (주)이천일·아울렛의 이응복 사장이 밝히는 사업전략이자 성공비결이다. 이천일·아울렛은 패션의류 이월상품을 싸게 파는 미국식 아울렛과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백화점의 장점을 따서 만든 패션 할인 백화점. 李사장이 지난 93년 이랜드 그룹 기획실장 시절 내놓은 아이템이다. 이천일·아울렛에는 98년 부임했지만 인연의 끈은 훨씬 더 긴 셈이다.

“아울렛이 뭔지 잘 모를 때였죠. 이월상품은 기껏해야 동대문시장이나 평화시장에 넘기곤 했으니까요.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면서 이월상품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판매망이 필요했죠. 그룹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짜면서 유통쪽을 고른 게 먹혀들었습니다.”

미국식 아울렛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창고형 매장이지만 이천일·아울렛은 대단위 아파트촌을 파고 들었다. 그러면서 품질이나 서비스는 백화점 수준으로 끌어올려 가정 주부들을 끌어들였다. 이랜드 제품뿐만 아니라 웬만한 브랜드는 다 갖췄다. 지하에는 하이퍼마켓을 뒀고 유럽형 생활용품관인 모던하우스도 배치했다. 문화센터와 셔틀버스도 백화점 못지않다.

지난 94년 서울 당산동에 1호점을 낸 이천일·아울렛은 해마다 평균 53%대의 성장세를 보이며 4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매출 2천9백64억원, 당기순이익 60억원을 올렸고 올해는 매출 3천7백47억원, 당기순이익 2백28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장도 8개로 늘었고 올해 수도권에서 3개를 더 오픈할 계획이다.

이천일·아울렛은 특히 비상장 기업인데도 지난해 4월 자산 5천억 달러를 넘는 세계적 금융그룹 SSgA가 3백33억원을 투자, 성장성을 인정받았다. 이천일·아울렛은 SSgA의 투자와 구조조정에 힘입어 97년 6천45%였던 부채비율을 1백60%대로 낮췄다. 오는 4월께 코스닥에 오르면 금융비용이 줄어 수익구조도 더 나아질 전망이다.

도약의 걸림돌을 치운 李사장은 올해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전자상거래 도입이다. 지난 2월9일 SAP Korea와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도입 계약을 맺었다. 국내 유통업계 첫 사례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60억원을 모두 쏟아붓는다. 이는 전자상거래로 나아가려는 사전 포석이다. 올 9월이면 제품 입고에서 회계처리까지 정보가 리어타임으로 처리된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쯤에는 고객과 협력업체까지 하나로 묶는 ‘디지털 신경망’을 선보인다. 이 시스템이 돌아가면 전국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받을 수 있게 된다. 물류망은 이랜드 그룹이 갖고 있어 별 문제 없다.

이응복 사장은 “오프라인의 이천일·아울렛 매장과 온라인의 인터넷 매장을 동시에 갖춰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패션의류를 인터넷으로 할인 판매하는 첫 유통업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류유통이라는 ‘로테크’ 기업이 인터넷을 도구로 ‘하이테크’ 기업으로 거듭나는 셈이다.

이응복 사장은 또 의류산업이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얼핏 로테크 산업으로 보이지만 필수품이라 꾸준한 성장이 가능한 것. 몇몇 의류업체가 문을 닫은 것은 엉뚱한 곳에 무리하게 투자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응복 사장은 현대백화점과 센트백화점이 실패했던 자리에 유통업체로 서울 북부 상권의 부활을 이뤄냈다.

요즘엔 외국계 대형 할인점까지 이 지역에 뛰어들고 있다.

이젠 전국에서 자리를 잡을 채비다. 이응복 사장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디지털 신경망이 전국 구석구석에 뿌리를 내려 새로운 ‘유통 벤처’ 모델이 나올지 관심사다.

남승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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