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독과 KBS 도청 논란이 주는 교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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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02면

프라이버시권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이다. 하지만 언론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기준은 공익성과 진실성이다. 그런데 공익성이나 공공성은 추상적 개념이어서 모호하다. 판례는 부닥치고 엇갈린다. 기자 앞에 펼쳐진 취재 현장은 넓고 거칠다. 감시와 비판,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언론 보도엔 누군가의 명예훼손과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부정적 측면이 뒤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약 밀매 현장을 비밀리에 취재하면서 마약상의 동의를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그런 취재는 허용돼야 하는가. 기자들이 매순간 외줄을 타는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다.

차라리 이런 원칙을 둘러싼 논쟁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두말할 나위 없이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취재 방식이 지난 주말 영국에서 문제가 됐다.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이 거느린 168년 전통의 영국 일요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NoW)’는 10일 폐간된다. 이 신문의 특종 행렬이 유명 인사에 대한 도청을 통해서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신문의 불법 취재 관행이 처음 드러난 건 5년 전이다. 하지만 중단되지 않았다. 유명 인사들만이 아니었다. 범죄 피해자와 실종 소녀, 전사자 유족의 휴대 전화까지 해킹했다.

문제는 이게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엊그제 경찰은 민주당 당대표실을 도청했다는 의혹을 받는 KBS 기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수사는 진행 중이고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당사자인 KBS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항의하고 있다. 언론이 이런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경찰 수사를 통해 KBS의 결백이 입증되길 바란다.

하지만 영국의 거대 언론이든, 아니면 한국의 공영방송이든, 도청 같은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한국 국회에서 벌어진 도청 의혹은 이미 국민적 관심사가 됐고 회피하거나 덮을 수 없다. 만일 사실이라면 KBS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앞세워 절차적 정의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게 형사소송법의 확립된 원칙이다.

불법 수사를 통해 구현되는 정의는 그런 관행으로 인해 궁극적으로 그 사회가 겪을 고통과 부정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수사뿐 아니라 취재와 보도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국민은 경찰이 거대한 공영방송과 집권당 국회의원을 상대로 제대로 수사할지 의문을 표시한다. 만일 경찰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면 특별검사제나 국정조사라도 실시해야 한다. KBS와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도청 사건의 당사자가 될지 피해자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KBS와 한 의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진실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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