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데우스노스아반도나?(신이시여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포르투갈 정부는 구제금융 1130억 달러를 받기 위해 고강도 긴축 대책을 마련했다. 포르투갈 페드루 코엘류 총리(왼쪽)와 파울루 포르타스 외무장관이 1일 의회에서 긴축 법안이 통과된 직후 야당 의원의 비판을 듣고 있다. [리스본 로이터=뉴시스]


유럽 국채 위기가 다시 불거졌다. 그리스발이 아니다. 포르투갈발이다.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5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용등급을 4단계나 강등했다. Baa1(BBB+)에서 Ba2(BB)로 낮췄다. 포르투갈 국채는 이제 투자 부적격이다.

 무디스 강등 직후 미국·유럽의 주요 증권시장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스 2차 긴축법안 이후의 오름세가 꺾였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인베스텍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러셀 실버스톤은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이 충격을 받은 것은 강등 자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강등은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버스톤은 “무디스가 밝힌 강등 근거가 문제”라고 말했다. 무디스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포르투갈이 2차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채권자의 희생이 두 번째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포르투갈이 그리스처럼 또다시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어 무디스는 “포르투갈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약속한 긴축 목표, 세수 확대 등을 달성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포르투갈은 긴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2013년 하반기엔 금융시장에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애초 계획이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식 구제작전에 대한 파문 격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애초 EU는 포르투갈에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긴축 재정, 구조조정, 민영화 정책을 처방했다. IMF가 1994년 멕시코 사태 이후 애용한 거시경제정책 처방이다.

IMF는 “채무 위기국이 구제금융으로 시간을 벌고 긴축과 민영화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면 스스로 돈을 빌려올 수 있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동안 IMF식 처방은 거센 비판의 대상이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IMF식 구제작전이 위기 당사국의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민의 고통만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무시됐다. 대안 없는 주장으로 치부됐다. IMF 쪽은 오히려 90년대 말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위기 탈출을 근거로 내세운다.

IMF의 거시경제정책 처방이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IMF식 처방의 문제점은 그리스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은 경제를 더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뜨렸다. 중소기업과 개인 파산이 급증하는 바람에 정부의 세금 수입이 줄었다. 재정적자는 더욱 커졌다. 최근 마련된 2차 긴축도 “시간 벌기 외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전망했다.

 IMF식 처방의 한계가 드러나자 대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로이터는 월가와 런던 금융시장 전문가의 말을 빌려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단기 채무를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한 뒤 10년 이상의 장기 채권을 내놓으면 경제 회복을 기대하며 사겠다는 투자자가 많을 것”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단기 채권자를 희생시켜 빚 부담을 줄이는 게 상책이란 얘기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긴축 처방을 뺀 구제금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달 칼럼에서 “구제금융으로 시장 신뢰보다는 실물경제의 회복을 노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