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래 방사청장에 거는 개혁의 기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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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플라자호텔서 열린 공군력 발전 세미나에선 ‘스텔스의 2인자’ F-35 전투기 도입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참석자들이 ‘상황이 복잡하다. 생산이 제대로 될지, 우리에 맞는 성능이 될지 의심스럽고 너무 비싸질 것 같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공군의 현역 대령이 응답에 나섰다.

“미 공군과 한국의 초기작전운용능력(IOC) 기준이 다르다. 미 공군은 전 세계에서 작전을 하기 때문에 IOC 기준이 아주 높지만 우리는 아니다. 미 공군에 ‘전투 작전 가능’이란 승인을 못 받아도 한국은 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그러니 F-35가 2016년 미 공군의 IOC를 못 얻어도 우리와는 상관없다.” 이 관계자는 5월의 한 세미나에선 “왜 F-35가 비싸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업체(록히드마틴)는 우리에게 F-15K보다 싸다고 한다”고 했다.

미 공군에는 성에 안 차는 F-35라도 한국 공군은 구입할 수 있고 ‘남들에겐 비싸게 팔아도 우린 싸게 살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를 보면 좀 갸우뚱해진다.

지난달 미 상원 무기위원회에선 미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제안한 ‘F-35 개발 목 조르기 법’쯤 되는 법안이 부결됐다. F-35 개발비가 2011년에 목표보다 10% 늘면 보호관찰(probatio)이 시작되고, 2012년 다시 10% 늘면 사업을 폐기시킨다는 내용이다. 부결됐으니 끝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표결은 ‘13대 13’ 가부동수였다. 한 표만 더 있어도 가결이었다. 매케인은 재상정을 벼른다. 이런 법안이 나온 건 개발비가 당초보다 50%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 추세를 못 막으면 F-35는 위태로워진다. 비슷한 시기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F-35 개발 예산 삭감은 불가피하다. 미군의 구입 대수는 줄 것”이라고 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F-35사업은 위기에 처해 있고, 살아 남아도 비행기 가격은 아주 비싸진다’는 뜻이다. 한국이 그 영향을 피해갈 수 있을까. 미국에서 벌어진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면 ‘우리와 관계 없다’고 보는 듯한 공군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처럼 ‘현지의 흐름과 유리된 듯한’ 무기 구입의 모습이 자주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주 본지가 보도한 ‘고고도 무인 정찰기(HUAV)사업’도 한 예다. ‘뛰는 시세에 비해 한국 예산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 방위사업청은 “미국이 보낸 자료를 기초로 만든 예산”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차라리 ‘그런 문제를 알고 있고 다른 자료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마음이라도 놓였을 것 같다. 아파치 헬기 경우는 “미국이 제시한 가격으로 만든 예산”이라고 했는데 정작 헬기 제조사의 고위 간부는 “한국 예산은 기체 구입비 정도고 무기ㆍ훈련ㆍ정비 수요를 감안하면 훨씬 비싸진다”고 말했다.

본지는 북한 방사포를 막기 위해 배치한 아서-K 레이더의 ‘고장 사태’에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군사기밀이라 안 된다. 고장은 다 고쳤고 정상 가동된다”고 짧은 답을 보내 왔다. 그런 설명만을 듣고 납득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서 레이더는 핵심 안보 장비다. 고장 나면 고치면 되는 승용차가 아니다. 승용차가 고장 나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된다. 하지만 아서 레이더가 고장 난 날 북한 장사포가 공격을 가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에는 대형 잠수함 개발과 관련해 문제가 지적되자 방사청이 이를 지적한 조직을 왕따시킨 채 대책본부를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이 방위산업체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다.

이런 잡음들이 생기는 원인은 별게 아니다. 방위산업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비밀의 장막’ 뒤에 숨으려고 하는 오랜 관습과 전문성 부족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무기 구입은 수조원의 예산이 들지만 너무 복잡해 언론과 국민이 잘 알 수 없다는 허점에 편승한 건 아닌지 의문이다. 얼마 전 만난 안보 분야의 고위 당국자는 “방사청이 문제가 적지 않지만 자칫하면 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참 접근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과 지적은 방사청엔 유감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문제가 있어 보이니 시정하자’는 충정을 봤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관료 출신인 노대래 청장에게 기대가 크다. 노 청장은 합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무기 구입에서도 이젠 합리주의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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