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인재중개 '헤드헌터', 뻥튀기로 이직 유혹

중앙일보

입력

대기업 경제연구소에 근무하던 姜모(33)씨는 지난해 10월 헤드헌터업체 A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신의 현재 연봉보다 30% 많고 원하는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는 외국계 회사가 있다. 이직할 의향이 없느냐' 는 내용이었다.

고민하던 姜씨는 한달 뒤 A사가 소개하는 컨설팅업체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입사해보니 헤드헌터업체에서 소개받은 내용과 사정이 사뭇 달랐다. 연봉 수준이 거의 그대로인데다 근무부서도 姜씨가 희망했던 인사조직 분야가 아닌 전혀 경험이 없는 IT관련 부문에 배치됐다.

姜씨는 헤드헌터업체에 항의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A사에선 "처음 제시한 조건에서 약간의 변동은 있을 수 있다" 는 답변뿐이었다.

대기업 C사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崔모(26.여)씨도 헤드헌터업체 말만 믿고 직장을 옮겼다 피해를 본 경우다. 崔씨는 지난해 9월께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헤드헌터사에 구직을 신청, 1주일 만에 이동전화 렌털업체를 소개받아 일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崔씨가 새로 일하게 된 이 회사의 급여는 당초 헤드헌터업체가 제시했던 액수의 70% 수준이었다.

근무조건도 소개 때와는 달리 주6일 근무에 평일은 야근까지 하는 등 이전 회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다. 결국 崔씨는 2개월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대기업체 직장인들이 '벤처로, 벤처로' 옮겨가고 있는 가운데 인재와 업체를 중개해주는 일부 헤드헌터업체가 채용조건 등을 이직자들에게 부풀려 제공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믿고 일자리를 옮겼다 퇴사하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헤드헌터업계에 따르면 1998년까지 전국에 60여개에 불과하던 업체가 지난 한햇동안만 30여개가 생겨나 모두 1백개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실업체들이 고개를 들어 '무조건 이직만 시키고보자' 는 식으로 이직자들에게 뻥튀기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취업 초년생들도 이들의 무책임한 소개로 골탕을 먹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E대 신방과를 졸업한 金모(24.여)씨는 지난해 한 헤드헌터업체의 중개로 게임프로그램 제조업체에 취업했으나 金씨가 담당한 일은 차 끓이고 전화받는 등 단순 업무였다.

게임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입사했던 金씨는 헤드헌터업체가 제공한 정보가 잘못된 사실을 알고 6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헤드헌터업체 모임인 한국서치펌협의회(KESKA) 김국길(金國吉)회장은 "적지않은 업체가 제대로 된 업무수행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면서 "반드시 기본 채용요건을 담은 계약서를 헤드헌터업체와 작성해야 한다" 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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