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깃발 한국…엘리트 부패가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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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정사회 열풍과 한계점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6월 29일자.

“고도성장과 극심한 경쟁이 특징인 한국사회에서 최근 ‘공정(fairness)’이 새로운 가치로 떠올랐다. 하지만 빈부 격차와 엘리트 계층의 부패 등이 공정사회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WP)가 29일 보도한 내용이다.

 신문은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최근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국민은 공정함이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 롯데마트의 ‘통 큰 치킨’ 사태처럼 한국 대기업이 중소업체의 압력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는 것이다.

 WP는 이런 현상이 그동안 재벌,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의 승자독식 경향과는 상반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러 현실적 문제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공정사회는 이루기 힘든 이상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식품가격과 대학 등록금 인상 등으로 서민 계층의 살림이 나빠지고 있으며, 서울과 지방 간 경제 격차가 여전하고, 대기업이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특혜와 뇌물이 법치주의 시스템과 정상적인 금융감독과 기업거래를 방해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정부 관료들은 대통령의 동반 성장 정책을 강조하며 엘리트 계층이 양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부처에선 소속 공무원들이 지인들과 값비싼 저녁식사를 하거나 골프를 치는 것을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하지만 정작 전·현직 관료들이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에 연루되는 등 한계를 보이고 있다. WP는 일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한국은 1960~70년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국가발전을 이루다 공식적인 민주화를 이룬 것은 87년”이라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런 현상은 급속한 민주화 과정에도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해외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 대통령의 국내 지지율이 20%대 후반에 머무르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본인의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넝마주이를 했던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대기업을 선호하고 부정 기업인을 사면한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대학생이었던 60년대에는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하면 좋은 직장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WP는 “한국사회에서 빈부격차 문제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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