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우리에겐 왜 컨슈머 리포트가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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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과장 광고라도 했으니 다행이죠. 그냥 가격만 올렸다면 제재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27일 허위·과장광고로 제재를 받은 농심 ‘신라면 블랙’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털어놓은 속내다. 1억5500만원의 과징금에 대해 여기저기서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게 좀 억울하다는 얘기다.

 공정위라고 ‘솜방망이’를 때리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시장을 장악한 업체의 부당한 가격 인상이란 비판이 나왔지만 이를 밝혀내는 건 사실 쉽지 않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를 적용해 처벌한 사례가 드물다. 그래서 공정위가 택한 게 ‘우회 제재’였던 셈이다.

 되짚어보면 애초 경쟁 당국이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는 사안이었다. 설령 공정위가 표시광고법상 최대 과징금인 3억4000만원(관련 매출의 2%)을 매겼더라도 ‘솜방망이’가 ‘철퇴’로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정작 기자가 아쉬웠던 건 따로 있다. ‘왜 우리에겐 컨슈머 리포트가 없을까’다. 미국 소비자단체가 발행하는 컨슈머 리포트의 위력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아이폰4’의 문제를 지적하자 애플의 주가가 급락하고,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가 휴가까지 취소하고 달려 나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 힘의 원천은 기업과 정부로부터의 철저한 독립성, 그리고 소비자들의 신뢰에서 나온다. 아마 미국판 ‘신라면 블랙’이 나오면 가장 먼저 나설 곳도 경쟁 당국이 아닌 컨슈머 리포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런 ‘소비자의 힘’이 잘 안 보인다. 정부 관계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장에선 가격 상승에 그리 민감해 하지 않는 소비자들도 꽤 된다. 그러면서도 물가 당국에 대한 기대수준은 높다. 그렇다 보니 시시콜콜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서고 ‘관치’ 논란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8일에는 기획재정부 차관이 치솟는 외식비를 걱정하면서 다시 공정위를 거론하기도 했다. 소 잡는 데 쓰는 칼을 더 이상 파리 잡는 데 쓰지 않기를 바란다. 잡히지도 않거니와 칼까지 망가지기 십상이다. 아예 이번 기회에 소비자운동을 크게 활성화하는 방안을 따져볼 일이다. 밀가루 값은 50원 올랐는데 칼국수 가격이 1000원 올랐다면 바로 한국판 컨슈머 리포트가 등장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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