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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110㎞서 무중력 유영, 세계일주 값으로 우주 한바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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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11면

미국의 괴짜 갑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야심작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이 지구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소수의 억만장자들만 다녀왔던 우주여행의 가격을 대폭 내려 대중화를 꾀한다. 민간인 최초의 우주여행객은 미국인 데니스 티토다. 그는 자기 돈 2000만 달러(약 215억원)를 들여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TM 32호를 타고 우주에 다녀왔다. 이 가격은 이후 ‘공식’처럼 굳어졌다. 당시 미국 정부는 티토의 계획에 반대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센터에서 훈련하겠다는 그의 요청도 거부했다. 하지만 그가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오자, 미 의회는 티토를 불러 민간인 우주여행을 상세히 물어보았다. 이후 남아공 거부 마크 셔틀워스, 미국 사업가 그레고리 올슨 등이 우주여행을 다녀왔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14> 우주여행

버진 갤럭틱이 추진 중인 2시간30분짜리 우주여행은 약 5~6분간 대기권 밖에서 무중력 자유유영을 체험할 수 있는 상품이다. 미국 뉴멕시코주 스페이스포트 우주기지에서 출발한 우주선은 지상 15㎞ 상공으로 이륙한다. 일반 여객기의 비행고도(10㎞)보다 높은 수준이다. 적도 부근을 지나면서 모선(母船)인 화이트나이트2에서 관광선 스페이스십2가 분리된다. 조종사 2명과 관광객 6명을 태운 스페이스십2는 로켓 추진력으로 고도 110㎞ 부근(준궤도)까지 올라가 대기권을 벗어난다. 이어 스페이스십2는 5~6분간 무중력 상태로 지구 주변을 선회한다. 지구로 돌아올 때는 자유낙하 방식이다. 지상 30㎞부터 접었던 우주선의 날개를 펴고 글라이더가 내려오듯 착륙한다.

이런 방식은 그동안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ISS에 다녀왔던 7~8일짜리 우주여행에 비하면 ‘간단한 투어’에 불과하지만, 가격을 대폭 낮춘 게 강점이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여행 가격은 20만 달러(약 2억1500만원)다. 티토의 2000만 달러에 비해 100분의 1밖에 안 된다.

수조원 시장 규모, 우주 허니문도 성큼
버진 갤럭틱의 우주여행 프로젝트는 내년에 대기권을 벗어나는 시험비행을 마친 뒤 2013년부터 상업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탑승 희망자들의 문의가 빗발친다. 비행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20만 달러 전액을 입금한 예약자만 100명이 넘는 등 모두 400여 명이 예약했다. 이 중 60%는 우주를 향한 꿈을 접지 못한 전직 파일럿이다. 이 회사 김희정 마케팅 차장은 “비행기를 몰고 세계를 누비던 ‘빨간 마후라’들이 마지막 로망인 우주를 꿈꾸며 예약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액 입금 예약자 중에는 한국계 미국인도 끼어 있다.

준궤도 관광 우주선 ‘스페이스십 2’. [버진 갤럭틱 제공]

관광 우주선 안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우주 유영을 하고, 우주선 창밖을 통해 지구 세상을 관람할 수 있다. 2001년 ISS를 방문한 첫 우주관광객 데니스 티토는 “천국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짧은 시간이지만 과학 실험을 할 수도 있다. 지난 2월 미국 과학연구기관 사우스웨스트 연구소는 버진 갤럭틱 티켓 2장을 구매했다. 지상 110㎞ 높이에서 인간의 맥박ㆍ혈압 등의 신체상태를 관찰하고, 소행성 등에서 떨어져 나온 우주 먼지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두 장의 표값은 NASA 연구비에 비하면 엄청 싼 셈이다. 하지만 기내식은 먹을 수 없다. 우주 유영 시간이 짧은 데다 객실 승무원이 별도로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우주 여행업체 XCOR 에어로스페이스도 우주관광선 ‘링스(Lynx)’를 개발 중이다. 조종사 1명, 관광객 1명이 타는 소형 우주선으로 조만간 시험비행을 할 계획이다. 비행 경로는 버진 갤럭틱과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XCOR은 9만5000달러(1억원)라는 가격을 제시한다. 스페이스 어드벤처, 보잉 등 영미권 우주여행업체들 역시 앞다퉈 관광용 우주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관광 우주선의 제작비는 대당 5000만 달러(540억원) 수준이다. 2억원짜리 티켓을 팔더라도 270명 이상을 태워야 제작비가 빠진다. 아직은 투자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시험비행을 마치면 시장 규모가 급증할 전망이다. 우주여행 업체들이 수익성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다. 버진 갤럭틱 측은 상용 탑승이 시작되면 6대의 우주선으로 매일 취항할 계획이다. 매일 6명의 승객을 태운 우주선 6편을 취항하면 연간 2조83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예상한다. 다른 업체들까지 감안하면 시장 규모는 4조~5조원으로 늘어난다.

탑승 인원이 늘어나면 가격이 더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2020년 이후에는 우주선이 대형화되고 탑승횟수가 급증할 경우 우주 준궤도 여행 경비가 수천만원대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우주여행이 본격화되면 연관 산업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가장 유망한 분야는 우주 허니문이다. 일본의 한 결혼이벤트 회사는 230만 달러(24억8000만원)짜리 우주결혼식 상품을 내놨다. 미국 오클라호마 우주기지에서 출발해 약 100㎞의 고도를 돌고 내려오는 한 시간짜리 상품이다. 조종사 1명과 목사(주례·승무원 겸임), 신랑·신부, 하객 2명 등 총 6명이 탑승한다. 안전에 대한 신뢰감만 준다면 ‘우주 커플’은 시간 문제다.

우주항공기술의 발달로 기존의 항공기술 역시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에어버스를 개발한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뉴욕∼런던을 두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차세대 초음속 여객기 ‘제스트(ZEHST)’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여객기보다 더 높은 고도 32㎞의 성층권에서 로켓을 발사해 시속 5029㎞로 달린다. 비행기 개발은 2020년께 완료될 예정이나 2040~2050년에나 상용화될 전망이다.

안전사고 배상제도 선행돼야
민간 우주여행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에 대한 우려다. 사고가 날 경우 법적 분쟁도 예상된다. 나로호 발사체 개발을 맡았던 박승용 대한항공 우주개발팀 부장은 “여객기 한 대가 떨어져도 몇 나라 정부가 난리를 치는 상황에서, 우주여행 사고가 난다면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라며 “세계 각국이 머리를 맞대 법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승필(국제경제법) 교수는 “우주여행업체가 우주관광 정보를 독점하고 탑승객은 관련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탑승객이 지병 등의 이유로 갑자기 사망할 경우 특정 질병 고지 의무 등 민형사상 책임과 손해배상 문제로 치열한 법적 공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여행객은 사고에 대비한 보험을 들기도 어렵다. 우주에 나가는 것 자체에 대한 위험률을 계산할 통계가 없는 데다, 마땅한 재보험사를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각국의 항공우주 당국은 우주로 나가는 인간의 신체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생리적 변화는 물론 우주여행 도중 예기치 못한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을 찾는다. 국내에서는 공군에서 주로 맡고 있다. NASA 연구원 출신인 공군사관학교 박세권(우주적응훈련) 교수는 “우주 환경에서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우주 비행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발명했다. 그 후 10년 뒤인 1913년, 프랑스 조종사 롤랑 가로(Roland Garros)가 프로펠러 비행기로 지중해를 횡단한다. 비행기 발명 이후 108년이 지난 지금, 매년 연휴마다 각국 공항은 여행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렇다면 우주여행은 인간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주희 우주과학팀장의 설명이다.

“대서양을 비행기로 건널 수 있다, 달에 인간이 갔다. 이런 사건들은 그동안 인간이 몰랐던 사실을 갑자기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충격이었죠. 하지만 우주는 다릅니다.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건 시간·기술·비용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제는 그런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죠. 휴가를 맞아 우주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시대가 머잖아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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