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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달걀 같은 발상 … 모양·소리 이질감 극복이 성공 열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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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20면

신지애의 유일한 메이저대회 우승은 2008년 브리티시 오픈이다. 당시 신지애는 PRGR 클럽을 썼다.
PRGR은 프로 기어(Pro Gear)의 약자다. 아마추어들이 이 클럽을 잡으면 프로처럼 칠 수 있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일본의 타이어 회사인 요코하마고무의 스포츠사업부에서 만든다. 후발 브랜드인 PRGR은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 줘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헤드 스피드’라는 컨셉트다. 이전까지 클럽을 선택할 때 기준은 이랬다. “몸을 보니 왕년에 운동 좀 하셨겠네요. 팔 힘도 강하시네요.
단단한 샤프트가 어울리겠어요.” 그러나 팔씨름 능력과 스윙 능력은 다르다. 힘이 세다고 공을 멀리 치는 건 아니다. 힘이 약하고 덩치가 작아도 유연성이 좋고 스윙 궤도, 코킹 등 기술이 좋으면 훨씬 더 빠른 스피드를 낸다. PRGR은 업계 최초로 헤드 스피드 개념을 만들었고 자신의 스피드에 적당한 클럽을 고를 수 있게 했다.

성호준의 골프 진품명품 <18> PRGR의 뚜껑 없는 우드 ‘에그’ 

PRGR은 작은 업체이지만 이외에도 골프 클럽 발전사에 자주 등장한다. 드라이버 헤드의 재질을 여러 종류로 만든 만든 콤포짓(composite·혼합) 드라이버를 처음 낸 곳도 PRGR이다.

2010년 낸 발명품은 에그(egg·계란)다. 껍데기를 살짝 깨 달걀을 세운 콜럼버스처럼 상식을 파괴해 나온 제품이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를 인정받아 일본 골프다이제스트 잡지에서 주는 올해의 클럽상을 받았다. 그들이 깨뜨린 상식은 뚜껑이다.

골프에서 클럽 헤드는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좋다. 잘 떠서 비거리가 늘고, 미스샷을 해도 거리 손실이 작다. 이건 골프용품 기술의 ABC다. 요즘은 아마추어 골퍼도 대부분 안다. 클럽 제작업체들은 무게중심을 내리려고, 그 방법 중 하나로 뚜껑의 무게를 줄이려 무진장 노력했다. 그러나 뚜껑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깨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50년 전에 있었다. 1960년대 초, 무게를 주위로 분산시킨 혁명적 제품인 핑 앤서 퍼터의 묵직한 헤드에는 뚜껑이 없었다. 앤서 퍼터의 무게 분배 개념은 모든 클럽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우드의 뚜껑을 없앤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에그의 발상 전환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모양이다. 뚜껑이 없는 우드는 낯설다. PRGR 한국지사는 드라이버를 한국에 들여오지도 않았다. “모양이 너무나 특이해 팔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골퍼가 클럽을 느끼는 건 세 가지다. 시각과 무게감, 소리다. 에그는 일단 시각적으로는 좋지 않다. 무게감은 큰 문제가 없지만 소리가 별로다. 헤드 뚜껑은 볼 타격과는 전혀 관계없으나 소리 공명에는 영향을 미친다. 2006년 나온 클리블랜드의 하이보어 드라이버는 절반쯤 뚜껑이 없는 형태였는데 소리가 나빠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시각이든 청각이든 무엇이 좋은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핑 앤서 퍼터도, 캐비티 아이언도, 메탈 우드도 처음에 나왔을 때 보기에 낯설었고 저항이 컸다. 그런 흉측한 물건으로 하는 골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발이 빗발쳤다. 그러나 성공했다. 성능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던 경우도 있고 마케팅을 잘한 경우도 있고 둘의 조합인 경우도 있다.

PRGR은 던롭이나 투어스테이지 매출의 20% 정도에 불과한 회사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지도 않는다. 또 에그는 비싸다. PRGR의 기존 제품 우드는 45만원 정도인데 에그 우드는 60만원이다. 드라이버 값이다. 뚜껑을 깬 발상을 인정할지 안 할지는 소비자들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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