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한국 골퍼들은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세게, 멀리 치는 걸 좋아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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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오랫동안 한국 시장을 관찰한 노지리 야스시 SRI 스포츠 사장은 “한국 골퍼의 취향에 맞는 기능과 감성을 다 맞춰주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니스튜디오]

나의 모습을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내 자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 골퍼의 특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일본 골프 용품 회사 SRI 스포츠의 노지리 야스시(56)사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golf&과 인터뷰를 했다.

SRI 스포츠는 던롭과 젝시오, 스릭슨, 클리블랜드를 소유한 골프용품 업계의 거인이다. 일본 스미토모(住友) 그룹 내의 회사로 1930년부터 골프 볼을 만들었고 도쿄 올림픽을 즈음해 골프 클럽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진 피해로 자국 내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 브랜드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노지리는 “골프용품 매출이 미국은 정체, 일본은 감소하고 있는데 세계 3위 시장인 한국은 아직도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자본이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하면서 아시아 시장이 골프용품 업계의 가장 큰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젝시오는 11년 연속 일본 1위 업체다. 한국 시장에서는 미국의 빅3브랜드를 제외한 업체 중 1위다. 던롭 젝시오가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한국 골퍼의 특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SRI는 한국 골퍼의 스윙 템포는 일본 골퍼들보다 약간 빠르다는 것을 파악했다. 한국엔 힘껏 때리는 히터형 골퍼가 많은 반면, 일본 골퍼들은 스윙 리듬을 중시하는 골퍼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분석도 했다.

한국과 일본의 남녀, 연령별로 구분된 1000명의 골퍼를 대상으로 스윙을 분석한 결과 예상대로 한국 골퍼의 경우 남녀 모두 전 연령대에 걸쳐 일본 골퍼보다 평균 헤드 스피드가 4~5㎞/h 빠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지리는 “수치로 양국 골퍼의 특성을 확인한 후 아시아에 똑같은 스펙으로만 출시하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강한 스윙을 하는 한국 골퍼를 위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008년 출시 모델인 더 젝시오와 2010년 출시 모델인 신젝시오의 한국 모델은 일본 출시 모델보다 단면강성을 높인 한국용 샤프트(Developed For Korea)를 장착했다. 일본용 제품의 인장강도가 70t인데 한국용은 72.5t이다. 여성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확연했다. 한국 여성 골퍼들의 평균 연습량이 일본 여성 골퍼들보다 더 많고, 스윙이 강하다.

글로벌 골프용품 업계에 한국은 특이한 시장이다. 초보자들은 치기 쉽고 방향성이 좋은 주조가 아니라 어렵고 비싼 단조 아이언을 선호한다. 스윙 스피드가 느린 사람들도 빠른 사람에게 적당한 클럽을 원한다. 초고가 클럽들이 대부분 일본 브랜드지만 한국의 시니어 골퍼들이 일본 시니어 골퍼보다 고가 클럽과 고반발 클럽(비공인 클럽)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한국 골퍼들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매우 신경을 쓰며 체면을 중시하고 거리에 대한 집착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노지리는 “고객의 선택은 옳다”면서 “클럽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은 성능이지만 한국 골퍼의 취향에 맞게 기능과 감성을 다 맞춰주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젝시오는 일본에서는 만들지 않는 10.5도, 11.5도의 여성용 드라이버를 한국에서만 낸다. 느린 스윙스피드로 비거리를 낼 수 있는 프리미엄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디자인과 소리에 민감한 점을 고려해 일본용과 다른 보다 컬러풀한 디자인의 클럽을 만들 계획이다.

한국 자본이 인수한 타이틀리스트의 국적이 어디인가를 물어봤다. 그는 “제품의 국적은 생각해 본 적 없다. 어떻게 하면 따라잡을 것이냐를 생각할 뿐”이라고 했다. 노지리는 “과거 던롭 65와 DDH 볼은 최고였다. 프로V1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스릭슨 Z스타가 충분히 탈환할 수 있다. 테스트를 해봐도 결과가 더 좋다. 프로 V1을 오랫동안 쓴 선수들의 기호를 바꾸는 것이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노지리는 또 “미국의 빅3가 골프용품의 트렌드를 만들어 가지만 기술적 우위에 대한 확신이 있다. 젝시오 5, 6, 7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데 성능이 좋고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SRI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라고 했다.

기술이 그렇게 좋다면 왜 세계시장을 석권하지 못했을까. 노지리는 “일본 시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사실 해외로 진출할 필요가 없었다. 타이어 회사에서 독립한 것이 2000년대 초반이며 그때 세계화 전략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7년 말 클리블랜드를 산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노지리는 “지역에 따라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데 던롭과 젝시오, 스릭슨, 클리블랜드 등 다양한 브랜드로 유연한 공략을 할 수 있는 SRI는 장점이 있으며 스릭슨 볼 판매를 위해 클리블랜드의 북미 영업채널을 활용해 큰 성과를 봤다. 조만간 세계적인 회사로 넓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2000년 만든 젝시오(XXIO)는 21세기를 나타내는 로마자 XXI(21)과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의 영어 ‘Onward’의 합성어로 ‘21세기를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스릭슨(SRIXON)은 2002년 회사 이름인 SRI와 무한대를 의미하는 ‘X’에 역시 ‘Onward’를 합성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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