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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나눔 릴레이] 장여구 인제대부속 서울백병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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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여구
인제대부속 서울백병원 교수


할아버지는 소년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무조건 아껴써라”. 소년이 자라 자신처럼 의사의 길을 걷게 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 먼저 생각해라”, “없는 사람부터 치료해라”. 평생 가난한 이들에게 ‘인술’을 펼치던 할아버지의 말씀은 중년이 된 손자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국의 슈바이처’ 고 장기려(1911~95) 박사와 그의 친손자 장여구(47·서울백병원 외과) 교수 얘기다.

 지난 15일 서울백병원에서 만난 장 교수는 ‘성산 장기려선생 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캄보디아 의료봉사 준비로 한창 바쁜 듯 했다. 8월 11~16일 캄퐁참이라는 도시를 베이스캠프 삼아 인근 오지 마을을 돌며 무료진료를 할 계획이다. 진료계획과 봉사단을 짜고 후원금을 모으는 일까지 장 교수가 직접 총괄하고 있다. 이번에는 자신을 포함해 서울백병원 소속 의사 3명과 간호사 3명, 자원봉사자 등 50여 명이 캄보디아에 간다.

 “이제 겨우 4년째예요. 할아버지는커녕, 정말 열심히 의료봉사하러 다니시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전 아무 것도 아니죠.”

지난해 8월 캄보디아에서 현지인들을 진료해주고 있는 장여구 교수.


기념사업회를 따라 필리핀 의료봉사를 가보긴 했지만 이렇게 장 교수가 직접 기획해 해외의료봉사단을 꾸리기 시작한 건 2008년 8월부터다. 내분비외과 전문인 장 교수는 “전문의가 된 지 10여 년이 된 그제서야 ‘이 정도면 환자들에게 큰 실수는 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백병원의 의료진도 함께 가서 현지의 빈곤층 갑상선 환자 13명에게 수술까지 해주고 왔다. 장 교수는 “기껏 진료를 하고도 제대로 치료해주지 못한 채 소화제나 해열제만 건네주고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왔다”며 “벼르고 벼른 끝에 4개월에 걸쳐 수술 준비를 해갔다”고 말했다. 현지 수술실 한 곳을 겨우 빌리긴 했지만 조명과 수술용 침대, 그리고 오래된 마취기가 전부인 병원이었다. 마취제는 물론 지혈기·침대보·거즈까지 가져가야 했다. 20년 안팎의 경험을 가진 마취의와 간호사들이 함께 자원봉사자로 나서준 건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장 교수는 올해 11월에도 캄보디아 수술봉사단을 꾸릴 계획이다. 8월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필요한 경비와 의약품들을 마련하기 위해 또 뛰어다녀야 한다. 기념사업회가 아직 소득공제를 해줄 수 있는 후원단체로 등록돼 있지 않아 기부금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려’라는 이름이 들어간 기념사업회를 후원단체로 만드는 건 오히려 할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하던 ‘우상화’를 하는 게 될까봐 걱정하는 그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똑똑함보다 성실함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하는 장 교수.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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