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 축구장의 소음·악취…다신 안 가리라 다짐했건만 지금 난 거기에 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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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동안 K-리그 경기를 많이 보지 못했다. FC바르셀로나에 대해서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눈을 빛냈지만, 국내 프로팀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사실 나는 사람 많은 데 가기를 무지 꺼리는 데다 나이 들수록 이동하기가 귀찮다. 차라리 집에서 퍼질러 앉아 맥주를 마시며 TV를 시청하는 게 백번 편하지. 내가 운동장을 기피했던 또 다른 이유는 더러운 화장실. 그리고 경기장 소음을 나는 견디지 못한다.

 스포츠 신문의 1면에 태극전사들의 사진이 축구공만큼 크게 실리던 시절, 2002년 어느 가을날. 전남의 원정경기를 보러 집을 나섰다. 일산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전철과 택시를 이용해 성남에 도착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구장인데도 전남을 응원하는 관중이 많았다. 오래전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정확한 통계수치와 어긋나더라도, 내 눈에는 전남의 유니폼이 더 어른거렸다.

 축구장에서든 야구장에서든 지방 출신이 수도권을 압도하는 이상한 현상,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인 응원문화를 그날 나는 처음 목격하지 않았나. 내 경험에 의하면 지방과 서울의 이런 역전 현상은 축구장보다 야구장에서 더 심한 것 같다. 두산베어스와 롯데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러 잠실야구장에 가면, 서서 ‘부산 갈매기’를 합창하는 부산사람들(엄밀히 말하면, 서울에 사는 부산 사람들)의 기세에 눌려 ‘서울 곰’들은 자기 집에서 정말 곰처럼 가만히 앉아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진공청소기가 공을 잡을 때마다 소녀들이 꺄악 꺄까악 탄성을 질렀다. 무언가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정겹다. 아나운서의 억지로 과장된 고함, 확성기에서 퍼붓는 기계음은 듣기 고약했다. 내 귀를 집에 빼놓고 경기장에 나왔으면 좋으련만…. 한·일 월드컵의 감흥이 여전하던 때,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려는 듯 김남일 선수는 최전방까지 올라와 열심히 뛰었고, 골도 넣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안으로 들어갈 때는 새침데기처럼 땅만 쳐다보고 위로 눈길도 주지 않더니, 골을 넣은 뒤에는 동료의 등에 업혀서 관중석의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그날은 ‘남일이의 날’이었다.

 전반전이 끝난 뒤에 화장실에 갔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나뒹굴고, 여자화장실은 하나밖에 없는지 복도까지 길게 줄을 섰고, 고약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내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퉁퉁한 십대 아이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결심했다. 나, 다시 여기 오지 않으리라. 또다시 이런 불결한 냄새를 맡으며 오래 서있지 않으리라. 마이크 소리가 귀청을 찢는 곳에서 신발먼지를 뒤집어쓰는 멍청한 짓을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작심하고 9년이 지나, 나는 다시 확성기가 귀청을 찢는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고생을 사서 하려 외출 준비를 한다.

최영미 시인·중앙일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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