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바퀴벌레 괴담과 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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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콘텐츠 본부장

최근 모 신문에 실린 황당무계한 뉴스가 인터넷에서 화제다. “미국 검은 집바퀴에 대한 디트로이트 생체과학연구소의 실험 결과 위험에 처했을 때 바퀴벌레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한다. 순간 시속이 150㎞까지 올라가며 일시적으로 아이큐가 340 이상으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학과는 거리가 먼 ‘괴담’에 불과하다.

 먼저 속도를 보자.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출간한 ‘곤충의 세계 기록(BOOK OF INSECT RECORDS)’의 ‘최고의 달리기 선수’ 항목을 보자. 바퀴의 최대 이동속도로 꼽히는 것은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연구팀이 발표한 수치다. 연구팀은 10.7cm 길이의 통로에 압력감지 센서를 부착한 뒤 ‘미국 바퀴’가 달리는 장면을 고속촬영했다. 그 결과 바퀴는 위기 상황에서 뒷다리 두 개로만 뛸 때 가장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초속 1.5m, 시속 5.4㎞였다. 이 기록은 1998년 기네스 북에도 실렸다. 하지만 바퀴는 ‘달리기 선수’ 목록에선 2위에 그쳤다. 그럼 1위는? 1996년 딱정벌레에 속하는 호주 참뜰길앞잡이(tiger beetle)의 일종이 초속 2.5m, 시속 8.9㎞를 기록했다.

 다음은 IQ. 지금껏 바퀴가 보여준 최고의 지능은 ‘사회적 의사소통을 할 능력’이다. 2006년 3월 ‘미국과학아카데미 회보’에 실린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독일 바퀴’ 50마리를 접시 위에 풀어놓았다. 접시에는 한 곳당 40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은신처가 세 곳 있었다. 바퀴들은 한동안 서로 더듬이를 비비며 ‘상의’한 뒤 결정을 내렸다. 세 곳 중 두 곳에만 정확히 25마리씩 들어간 것이다. 상황을 바꾸어 50마리 넘게 들어갈 수 있는 은신처를 세 곳 두었더니 모두 한 곳에 몰려들어갔다.

 이는 예상 밖의 능력이기는 하지만 엄청난 지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원래 IQ, 즉 지능지수란 정신연령을 실제 연령으로 나눈 수치에 100을 곱한 것이다. IQ의 평균치는 당연히 100이 된다. 그런데 “바퀴벌레의 IQ가 340”이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실험 대상이 된 특정 바퀴의 정신연령이 동년배의 다른 바퀴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사람과 비교해 언어능력·수리력·추리력·공간지각력이 월등하다는 뜻일까. 결론:그런 비과학적 실험 결과를 발표한 연구소는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여러 해 전부터 인터넷에 그런 내용의 괴담이 떠돌고 있을 뿐이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콘텐츠 본부장 poemloveyou@korme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