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하나로 세상 휘젓고 싶어 빈필도 박차고 나온 ‘엄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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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는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후 하프로 돌아왔다. 이제 하프를 완벽한 독주 악기로 만들려 노력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독특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프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빈 필하모닉 오디션이요? 합격할 거라 예상했어요.”

 프랑스 연주자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38)는 자신만만했다. 그의 악기는 하프다. 1998년 겨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의 단원들 앞에서 오디션을 볼 땐 25세였다. 이 자리에서 수석 연주자로 채용됐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였고, 제 연주에 대해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하프 현 위에서 단련된 자신감이 수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그는 2년 전 빈필을 나와 독립선언을 했다. 11년 동안 지켜온 명예로운 자리였다.

“한 시간 동안 기다렸다 짧게 연주하는 걸 30년쯤 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케스트라 음악을 참 좋아하고, 하프도 제 운명이라 여겼지만 좀 더 무대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싶었죠.”

 빈필도 성에 안 찬다며 그만둔 콧대가 대단하다. 허나 그럴 만 하다. 어려서 취미로 하프를 시작했지만 평생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닌 악기를 선택하긴 힘들었다. 부모도 다른 직업을 권했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후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도 1년을 공부했다.

 “런던에 머무는 1년 동안은 하프를 완전히 그만뒀어요. 경제나 법률 쪽에서 직업을 구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늘 오페라 극장이 있는 코벤트 가든에 갔어요. 두 시간씩 줄 서서 학생 티켓을 구해 공연을 봤죠.”

 그는 특히 오페라 음악에 관심이 많다. 공연장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오페라를 볼 때마다 하프 연주자에 주목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그는 결심을 굳혔다. 빈 국립 오페라 공연에 참여하는 빈필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바그너 ‘탄호이저’, 푸치니 ‘라 보엠’ 처럼 하프 연주가 아름다운 작품을 들으면 지금도 설레요. 독주자로 활동하느라 시간이 없지만, 오페라는 아직도 제 사랑이죠.”

 ◆“독특해지고 싶었다”=그는 다른 악기를 위한 기존 음악을 하프로 편곡해 연주하는 데 명수다.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해 주목을 받았다. 또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로 오케스트라 전체를 하프 한 대로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 부상하는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와 함께 오페라 음악을 ‘하프+소프라노’ 조합으로 연주해 색다른 맛을 내기도 했다.

 “하프는 기타부터 오르간까지 다양한 악기를 담고 있는 세계입니다. 넓고 풍부해요. 하프 한 대로 하루 종일 음악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열다섯, 열여섯 때부터 이 가능성을 연구해왔어요. 세계 청중을 모두 놀라게 할 날이 멀지 않았어요.”

 매스트르가 내놓은 앨범을 들어보면 이 점이 확실해진다. 힘과 자신감이 경연을 펼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는다는 삶의 원칙”이라 했다. ‘꿈의 교향악단’을 나와 독주 악기 하프의 자존심을 살려주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매스트르는 매일 아침 영어·프랑스어·독일어로 된 신문을 꼼꼼히 읽는다. “같은 사안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참 흥미롭다”고 했다. 이 독특한 하피스트는 앞으로 또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18세기 이후 유럽엔 여성에게 하프를 가르치는 전통이 생겼죠. 그래서 그림 속에서도 하프를 연주하는 건 모두 여성이죠. 이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여성 연주자가 많아요. 이것 또한 ‘독특한 인생’을 추구하는 저를 자극합니다.” 힘있는 남성 하피스트의 ‘대형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이다.

 2008년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내한했던 그는 이번엔 독주회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프랑스·스페인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려준다.

▶23일 오후 8시 서울 호암아트홀. 02-751-9607.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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