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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를 감방 보낸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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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상복
논설위원

개도 밥 주는 주인은 물지 않는다고 했던가. 기업의 감사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에는 이런 측면도 있다. 그래서 안전장치를 하나 더 두고 있다. 외부의 회계법인으로 하여금 회사 장부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따져보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감사도 별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을’이 되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숨기길 원하는 내용을 마구 들춰낼 경우 다음해 계약은 날아가기 십상이다. 아예 말을 잘 듣는 회계법인을 골라 일을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산저축은행 5개 계열사의 분식회계 규모는 2조4533억원에 달했지만 사전에 부정을 제대로 적발해 낸 회계법인은 하나도 없었다. 이 중 다인회계법인은 부산저축이 영업정지를 당하기 나흘 전까지도 회계 처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적정’ 의견을 유지했다. 전문가 집단임을 자처하는 회계법인들의 이 같은 행위는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범죄다. 검찰도 단단히 화가 났다. 문제를 야기한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을 형사 처벌하겠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부실 감사를 한 회계법인들에 철퇴가 가해질 것 같은 분위기다.

 과연 그렇게 될까. 회계법인의 엉터리 감사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징계는 늘 솜방망이였다. 현행법이 너무 무딘 탓이다. 무엇보다 회계법인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고의성’을 입증해야 한다. 회계사가 비리를 발견하고도 눈 감아줬거나 불법행위에 공모한 정황을 찾아내야 한다. 해당 기업이 의도적으로 비리를 감추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대체로 ‘단순과실’에 해당하는 벌만 받는다. 해당 기업의 감사업무를 1~3년간 맡지 못하는 정도다. 유망한 태양광 장비업체라던 네오세미테크란 상장사가 지난해 갑자기 부도를 내고 사라진 것도 분식회계 탓이었다. 그로 인해 다수가 주식투자금을 몽땅 날려도 회계사들이 감방 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회계법인들은 대부분 유한회사로 돼 있다. 부실감사로 수백억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아도 회계사들의 책임은 출자금에 한정된다. 회계법인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감사수수료의 4%를 손해배상공동기금으로 적립해 두지만 ‘코끼리 비스킷’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다인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며칠 전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이들이 이긴다 해도 공인회계사회가 관리하는 공동기금에서 받을 돈은 몇억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유명한 회계법인이 아니면 간판을 내리고, 회계사들은 새 직장을 찾아 떠나면 그만이다. 실제로 2002년 도산한 코오롱TNS의 분식회계를 적발해내지 못한 안건회계법인을 상대로 피해자들이 소송을 내려 하자 회계사들이 집단 퇴사해 버렸다.

 이런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금융당국은 무감각으로 일관해 왔다. 전문가들은 회계법인이 부실감사로 인한 피해를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배상보험에 강제로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회계법인의 설립 요건도 강화하고, 손해배상공동기금에 적립하는 돈도 늘려야 한다. 부실감사로 한 번 이상 걸리면 가중 처벌도 해야 한다. 이번에도 법과 제도를 손보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시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