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은 이제 ‘여름’...블루칩은 첫날부터 매진 행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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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02면

1 아트 바젤의 ‘아트 언리미티드’ 섹션에 참가한 남아프리카 작가 켄델 기르스(Kendell Geers)의 ‘Hanging Piece’.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아트 바젤은 한마디로 퀄리티와 판매 면에서 매우 성공한 아트 페어였다. 메인 페어에 참가한 대부분의 갤러리가 첫날과 둘째, 셋째 날까지 이어지는 판매 행렬에 대만족 했다. 팔린 작품을 떼고 새 작품으로 교체하는 곳이 많았다. “개장하자마자 마우리지오 카텔란, 제프 쿤스, 안드레아 거스키, 리처드 세라 등의 작품을 팔았다. 컬렉터들은 미국과 유럽인이 대부분이고 동양인도 약간 있었다. 올해는 그야말로 시장의 파워를 실감하고 있다.” 가고시안 갤러리의 판매 디렉터 닉 시누모비치의 말이다.

세계 최고의 미술 장터 아트 바젤(6월 15~19일)을 가다

2‘아트 언리미티드’ 섹션에 참가한 자메이카 작가 댄 플라빈(Dan Flavin)의 ‘Untitled (to Barry, Mike, Chuck and Leonard)’.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경기 회복세를 타고 이미 호조를 보였던 아트 바젤은 올해의 경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작품을 사지 못하는 예전의 아트 바젤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리스에서 온 한 컬렉터는 “모나 하툼의 작품을 사려고 했는데 런던과 뉴욕의 두 소속 갤러리에서 작품이 모두 솔드 아웃이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세기 초 근대 미술사 대가들의 작품과 현대 미술계 스타들의 작품이 진을 친 1층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의 수준 높은 작품들로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표현주의적 회화와 프린트로 부스를 꾸민 말버러 갤러리. 마치 미술관의 베이컨 전시 코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들 작품의 가격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두 판매되었거나 예약되어 말해줄 수 없다고들 말했다. 아트 뉴스페이퍼의 추정에 의하면 가장 대표적인 회화 한 점의 가격은 5000만 달러에 달했다.

3 브뤼노 비숍버거 갤러리가 내놓은 앤디 워홀의 ‘150개의 메릴린 먼로, 흑백과 회색’(1980). 길이가 10m가 넘는 대작으로 8000만 달러에 나왔지만 소장자의 마음이 바뀌면서 판매는 하지 않았다. [사진 최선희]4 미국 작가 리자 로(Liza Lou)의 조각 ‘The Damned’. [사진 최선희]

이 작품보다 더 높은 가격표가 붙은 작품은 브뤼노 비숍버거 갤러리에서 출품한 앤디 워홀의 ‘150개의 메릴린 먼로, 흑백과 회색’이었다. 1980년 제작된 이 작품은 총 길이 10m가 넘는 대작으로 출품가는 8000만 달러. 하지만 작품 소장자의 마음이 바뀌면서 판매는 하지 않았다.
쾰른과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칼스텐 그레브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개인전을 기획하면서 회화와 조각 작품을 선보였는데, 역시 첫날 대부분의 작품이 매진됐다. 런던 출신의 헬리 나마드 갤러리에서는 피카소, 마크 로스코, 르네 마그리트, 알렉산더 칼더, 조르주 브라크, 호안 미로 등의 미술관급 작품들을 순조롭게 팔아치웠다. 뉴욕 출신의 아쿠아벨라 갤러리 역시 피카소, 칼더, 페르낭 레제,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판매했다. 비슷한 작가들의 작품을 내놓은 캐나다 출신 랑도 갤러리 역시 작품의 대다수가 첫날 팔렸다고 밝혔다. 이렇게 근현대 미술사 대가들의 작품이 재빨리 팔려나간 것은 미술 시장에서 여전히 안전한 블루칩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강함을 입증하고 있었다.

현대 미술사에 등장하는 주요 작가들에 대한 요구 역시 매우 컸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앤서니 곰리·알렉스 카츠·게오르그 바셀리츠, 토니 사프라지 갤러리의 리처드 프린스·키스 헤링·대미언 허스트,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의 온 가와라, L&M 갤러리의 라이지 루와 제프 쿤스 등은 2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려나갔다. “컬렉터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왔고, 이들의 구매욕은 어느 해보다 강하다.” 파리 출신 페로탕 갤러리의 세일즈 메니저 패기 르뵈프는 싱글벙글이었다. 그는 “무라카미 다카시, 소피 칼, 베르나르 프리즈, 자비에 베이영, 바티 케르, 빔 델보이 등 갤러리 소속 작가들의 출품작이 대부분 팔렸다”고 밝혔다.

페로탕 갤러리처럼 2층에 자리 잡은 현대 미술 갤러리들은 작년에 비해 보다 실험적이면서 개념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1층 갤러리 작품들에 비해 한결 편안한(!) 가격대를 제시했지만(2000유로짜리 작품도 있었다!) 역시 아트 바젤은 비싼 아트 페어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에는 유난히 조각과 대형 회화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에서 진행되고 있는 ‘브랑쿠지/세라’ 전의 영향으로 리처드 세라의 대표적인 조각과 회화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또 대형 설치 작품의 기획전으로 꾸며지는 ‘아트 언리미티드’ 섹션에서는 아니시 카푸, 모나 하툼, 프레드 산드백, 단 플라빈, 제인슨 로즈, 로버트 로젠버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대형 조각 작품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동양에서 참가한 갤러리 수가 매우 적고(일본 3, 중국 2, 한국 1), 동양 작가들은 이미 5월에 열린 아트 홍콩에서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동양 작가 중 가장 많은 갤러리들에 의해 소개된 작가는 이우환이었다. 이우환의 작품은 우리 나라의 국제 갤러리를 비롯, 영국의 리슨, 일본의 스카이, 오스트리아의 타데우스 로팍, 독일의 앰 보훔 갤러리 부스 등에서 소개됐다. 가격대는 1억2000만원에서 4억원 선. 랑도 아트는 전광영 작가의 작품을 8만 5000달러에 팔았다. 양혜규 작가는 미국의 나프탈리 갤러리와 프랑스의 샹탈 크루젤 갤러리에서 소개됐는데 출품작 모두 솔드 아웃이었다.

한국에서는 국제 갤러리가 유일하게 참가했다. 국제 갤러리에서는 이우환과 양혜규 작가의 작품 외에 이기봉 작가의 작품을 6점 판매했다. 이 중 한 점은 프랑스의 LVMH컬렉션에 소장됐다. “올해의 성과에 매우 만족한다. 1995년 아트 바젤에 처음 참가한 이후 몇 년 전부터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작품을 파는 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그동안 해외 여러 아트 페어에 꾸준히 참가한 덕분에 이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고객층이 두껍다”고 국제 갤러리 이현숙 대표는 말했다.

메인 페어 외에 이번 아트 바젤 기간에는 볼타·스코프·리스트·솔로 프로젝트 등의 위성 아트 페어가 함께 열렸다. 이들 위성 아트 페어들에 참가한 갤러리 중에는 이미 인지도가 매우 높은 갤러리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위성 페어에 참가한 작품들은 쉽게 컬렉터를 찾지는 못하는 듯했다. “이 작품이 아트 바젤 안에 있었더라면 벌써 팔렸을 것”이라고 솔로 프로젝트 아트 페어에 참가한 한 갤러리스트는 아쉬워했다. 메인 페어장의 축제와 같은 성과 못지않게,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갤러리들의 실험적인 정신까지 아우를 수 있는 큰 그림이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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