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자, 먹 떼내 탄소연대 측정해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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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는 옆에서 볼 때 글자가 있는 면보다 바닥면이 넓은 철(凸)자형을 그리고 있다. 경북대 신소재공학과 예영준 교수는 “조선시대 활자에서 흔히 보이는 주조결함이 증도가자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증도가자는 글자 표면이 기포 없이 깨끗해 현대기술로도 쉽게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고려 금속활자인 소위 ‘증도가자(證道歌字)’가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과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주최한 ‘고려시대 금속활자 증도가자’ 학술 발표회가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증도가자’는 지난해 9월 공개된 이후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1377년)보다 100년 이상 앞선 활자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활자에 묻은 먹 연대 측정=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완 박사는 활자에 묻은 먹의 탄소연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연대측정의 신뢰도가 가장 높은 방식이 탄소연대측정이다. 그러나 금속은 특성상 탄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먹의 연대를 측정한 것이다.

 홍 박사는 “여러 개의 활자 시료 중 표면에 진흙이 묻어 먹이 노출되지 않은 표본 8개를 골라 조사했다”고 말했다. 그 중 먹의 양이 충분해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건 4개다. 분석 결과 서기 770년~1280년까지 분포했다. 홍 박사는 “나무의 내부(목심)는 생장하지 않으므로 오래된 연대를 나타내고, 최외곽만이 생장에 관여하므로 가장 젊게 나타난 연대를 신뢰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가장 젊게 나타난 비(悲)자의 1160년~1280년이 먹을 제작한 연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남권희 교수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하 『증도가』)의 저본(底本)은 1232년 몽고가 침입해 강화도로 천도하기 이전 개성에서 활자본이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먹의 연대 분석 결과와 시기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물론 먹의 제작 연대가 활자를 만든 연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먹이 제작되었을 즈음에 금속활자본이 인쇄됐으리라고는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도가』와 서체 일치하나=지난해 활자를 공개할 당시 남권희 교수는 “‘명(明)’ ‘어(於)’ ‘평(平)’ 등 12점이 『증도가』와 서체·크기 등이 일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청주고인쇄박물관 이승철 학예사는 “활자 101자를 조사한 결과 크기·무게 등으로 분류했을 때 ‘증도가자’류는 59자, 확인되지 않는 활자가 42자”라고 발표했다.

 그 중 『증도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글자는 37자다. 지난해 ‘증도가자’가 공개된 뒤 몇몇 글자는 목판본과 서체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학예사는 “『증도가』에 쓰인 모든 글자꼴을 ‘증도가자’ 37자와 비교한 결과 형태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번각본 『증도가』의 각자(새기는 사람)가 11명이고, 같은 사람이 새긴 글씨도 매번 약간씩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활자와 인쇄본의 글씨가 완벽히 동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남권희 교수는 “앞으로 ‘증도가자’에 대한 학제간 분석과 연구를 계속해 검증을 받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증도가자=『증도가(보물 758호)』에 쓰인 활자체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붙인 이름이다. 『증도가』는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을 1239년 목판으로 번각해 인출한 책이다. 적어도 1239년 이전 금속활자로 『증도가』를 인쇄했음을 추정하는 근거가 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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