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좋은 교수, 나쁜 교수, 이상한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좋은 시절 다 갔네. 참 안됐어. 고생들 해.” 요즘 정년을 앞둔 대학 교수와 교직원들은 후배들에게 이런 위로의 말을 한다고 한다. 후배들이 떠나는 선배들을 아쉬워해야 할 터인데 거꾸로 된 것이다. 정년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자신들과는 달리 팍팍해진 대학의 세태를 담은 얘기인 듯하다. 특히 중앙일보가 ‘등록금 내릴 수 있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대학사회의 문제를 비판하자 교수와 교직원들이 불만이다. 교수들은 “안식년(sabbatical year) 골프는 소수의 일탈일 뿐이고 연봉도 높지 않다. 선정적인 보도다”라며 항변했다. 교직원들은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심하다. 신이 내린 직장은 옛말”이라며 억울해했다. 그 심정 이해한다.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 송구하다.

 하지만 솔직해져 보자. 과연 교수들은 강의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가. 물론 훌륭한 분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몰아치기 강의로 일주일에 두세 번만 학교에 나오는 분, 틈만 나면 외국의 가족에게 날아가는 분, 테뉴어 받고 논문 손 놓은 분….” 남의 자식을 가르쳐 먹고사는 이들이 본분을 잊은 듯하다. 교직원들은 일이 고돼졌다고는 하나 민간기업을 보면 어불성설이다. 학생을 위해 직원이 필요한 것인데 마치 직원 먹여살리려고 학생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본지는 연간 1000만원으로까지 치솟은 등록금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대학사회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정부와 교육관료들의 어설픈 정책이 그 근인(根因)이지만 우선 대학의 자구노력을 유도해 스스로 등록금을 내리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반값’을 내세우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경종을 울리자는 뜻도 있다. 비효율적인 적립금 운영과 안식년제, 교직원 급여, 부실대학 실태 등 대학의 속살을 보게 된 독자들은 분노하며 본지를 열렬히 성원했다.

 기자는 최근 미국 하와이대에서 연수하며 현지 교수를 많이 만났다. 그리고 테뉴어·연봉·안식년 시스템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한국 교수들이 낙원에 사는 것 같다”는 농(弄)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와이대 정치학부 교수이자 미래학연구소장인 제임스 데이터(James A. Dator) 교수의 말은 특히 가슴을 후볐다. 1933년생인 그는 종신교수다. 학교에 오전 7시30분에 나오며 세 과목을 가르친다.

 -안식년을 몇 번 갔나.

 “평생 간 적이 없다. 그건 사치다. 방학이 있는데 무슨 휴식.”

 -한국 교수들은 안식년과 방학에도 월급을 받는다.

 “놀랍네!(Amazing!) 대학이 그리 부자인가. 우린 상상도 할 수 없다.”

 -연구하려면 안식년이 필요하다는 게 교수들 주장이다.

 “물론 연구하지 않으면 사라진다(Publish or perish). 하지만 평소엔 뭘 하지?”

 세계 미래학계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그는 공짜는 없다고 했다. 지금도 1년에 논문 두세 편을 쓰는데 그래야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와이대도 교수 간 경쟁이 치열했다. 대부분의 학부 게시판에는 개인별 연구실적(Published Research)이 게시돼 있었다. 실적이 없는 일부는 1학기에 짐을 쌌다. 데이터 교수는 “당연하다. 더 중요한 것은 강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아둔해서인지 노욕(老慾)을 느낄 수 없었다.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내 직업은 강의와 연구다. 평가가 나쁘면 떠나겠다.”

 -자신이 어떤 교수라고 생각하나.

 "글쎄, 별나면서(weird) 좋은(good) 교수…아하, 나쁜(bad) 사람인가.”

 그의 말을 우리 교수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괴팍한 노인의 궤변으로 생각할까. 교수들은 곧 방학에 들어간다. 그사이 제자들은 등록금 인하 시위를 하고, 또 아르바이트에 매달릴 것이다. 여러분은 좋은 교수, 나쁜 교수, 이상한 교수 중 어느 쪽입니까.

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