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강세속 아시아 약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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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놀리아'(목련)를 연출한 미국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에게 황금곰상을 안겨주고 20일 폐막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할리우드 영화, 그중에서도 삶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 작품들이 강세를 보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불행한 가정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도덕성을 짚은'매그놀리아'도 그런 작품이다.

'매그놀리아'외에 '허리케인' (덴젤 워싱턴.최우수 남자배우상)과 '맨 온 더 문'(밀로스 포먼.최우수 감독상)등 할리우드의 대작들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베를린영화제의 전도를 진단할 수 있는 방향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칸에 빼앗긴 '유럽 최고의 영화제' 자리를 되찾기 위해 독일 통일 이후 노력하고 있는 베를린영화제측으로서는 현재 세계영화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할리우드와의 '정략적 제휴'가 필요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 있다.

그래도 이번 영화제는 중국 시골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빌어 중국의 변화를 시적으로 잘 그려낸 장이모(張藝謨)감독의 '귀향' (The Road Home)에 은곰상을 수여, 아시아 영화를 배려하면서 균형감을 유지했다. 한국의 장희선 감독이 출품한 다큐멘터리 '고추말리기' 는 아시아 영화에 주어지는 넷팩부문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장편 영화를 한편도 출품하지 못해 이례적으로 한국영화 '품귀' 현상을 보인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마켓' 에서는 대조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영화를 사겠다는 외국 수입사들의 발길이 예년보다 확연히 늘어났다.

'주유소 습격사건' '쉬리' 등 지난해 흥행 대작을 비롯해 20편 가까운 작품을 들고 부스를 차린 미로 비전(대표 채희승)측은 "한국영화를 보는 시선들이 달라졌음을 실감 할 수 있다" 며 즐거워 했다. 채 대표는 "약 30곳에서 사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며 "이전 같았으면 제의가 들어오면 선뜻 계약을 했겠지만 워낙 반응이 좋아 좀 더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쉬리' 가 일본에서 선풍을 일으킨 덕에 바이어들이 한국 영화를 보는 눈도 좀 더 예민해 졌다.

특히 서울에서 외면당했던 '여고괴담2' 에 유럽 바이어들이 경쟁적으로 몰려 적정 수출가를 잡는데 애를 먹을 정도.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인터뷰'와 '오 수정' 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프랑스 영화학교 출신인 변혁 감독(인터뷰)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등으로 서구 비평계에서 이미 지명도를 갖춘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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