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설계 잘못 1000억 날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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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평촌에서 성남 방향 운중교 구간 오른쪽으로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다. 주민들은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김도훈 기자]


14일 오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평촌에서 성남 방향 운중교 구간. 교량 높이가 80m인 고속도로 바로 옆에 18층 높이의 아파트들이 서 있다. 판교신도시 서북쪽 끝에 있는 산운마을 H아파트다.

아파트와 고속도로의 거리는 불과 33m. 이들 아파트의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내는 굉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입주민 김순오씨는 “ 끊이지 않는 굉음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문도 열 수 없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잘못 설계한 아파트 때문에 멀쩡한 외곽순환고속도로를 1063억원 들여 옮기기로 했다. 이 비용은 판교특별회계 차입금 5400억원을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한 성남시와 125조원의 빚을 안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부담한다.

이 아파트의 소음이 얼마나 심각한지 측정했더니 주간 72.7㏈, 야간에는 65.7㏈이나 됐다. 소음진동규제법상 교통소음 규제치(주간 68㏈, 야간 58㏈)와 환경정책기본법상 도로변 소음 기준치(주간 65㏈, 야간 55㏈)를 모두 초과했다. 그뿐 아니다. 아파트와 고속도로가 가까워 만약 자동차가 추락하면 아파트를 덮칠 수 있다. 주민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음을 막기 위해 운중교 구간에 방음벽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80m 높이의 교량이 방음시설 하중을 견딜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LH와 성남시는 결국 운중교 구간 1.84㎞를 2015년까지 110m 북쪽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운중교 구간의 소음 문제는 신도시 계획 때부터 예견됐다. 2004년 4월 성남 판교지구 택지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당시 외곽순환도로를 포함한 광역도로변 6곳에서 측정한 소음치가 대부분 환경기준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중 H아파트 지점의 측정치가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 성남시, LH가 대비책 없이 사업을 강행했다.

성남=유길용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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