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고 휘어진 나무들의 완벽한 조화, 그게 병산서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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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병산서원의 누마루인 만대루(晩待樓).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짜리의 큰 규모로 앞쪽으로 병산과 낙동강을 낀 자연이 펼쳐진다. 병산서원은 강산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탁월하게 배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포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한국 건축사의 백미.”(유홍준·명지대 교수) “건축가들의 영원한 텍스트.”(김봉렬·서울대교수)” “자연과 인문학이 결합한 공간.”(황두진·건축가)

 경북 안동시 병산서원에 대한 예찬은 뜨겁다. 한국 건축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통 건축물의 하나로 꼽힌다. 건축과 자연의 만남이 조화롭다. 일본 건축가 구로가와 마사유키(74)가 지난 주말 이곳을 찾았다. 건축설계뿐 아니라 자기 이름을 단 의자와 테이블 등 디자이너로 유명한 그다. 일본 신현대미술관 설계자인 구로가와 키쇼(1934~2007)의 동생이다.

 그는 국민대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소장 최경란)가 주최한 한·중·일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석해 2박 3일간 하회마을·양동마을·봉정사·불국사 등을 돌아봤다. 그는 특히 “병산서원이야말로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공존을 강조한 동아시아 문화의 가치가 응축된 곳”이라고 감탄했다. 그와 답사 해설을 맡은 건축학자 이상해(성균관대) 교수를 만났다.

 ◆“건축물 자체가 가르침”

이상해 교수(왼쪽)와 일본 건축가 구로가와.

 구로가와는 서원에 들어서면서부터 탄사를 터뜨렸다. 만대루에 앉아 서원 앞 병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침묵했다.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와보니 정말 감동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컨퍼런스의 주제가 ‘흙과 바람’인데, 흙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고 했다.

 -왜 흙인가.

 “우리를 키워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라는 뜻이다. 건축물 자체가 학생들에게 가르침이 되는 것 같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도 놀랍지만, 나무를 쓴 방식에서도 가르침이 읽혀진다.”

 -어떤 가르침인가.

 “기둥부터 들보까지 모든 목재들은 자연의 그대로의 모습이다. 굽고 휘어진 것 등을 잘라내지 않고 하나하나의 개성을 존중해 배치했다. 각 나무의 개성을 살렸는데도 균형이 살아있고,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획일성은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 답을 보는 것 같다. 각기 다른 개성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일본 건축과 비교한다면.

 “다른 점보다 닮은 점이 크게 보인다. 지금 보니 한국 건축이 일본 건축의 스승임을 알 수 있었다. 일본 건축양식 중에서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스키야 양식은 조선의 영향을 받은 뒤 발전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주목했나.

 “흙과 바람이 서로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됐다. 바람이 건축물을 돌고, 통과하며 풍요로운 곳을 만들어냈다. 나는 항상 바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곳에서라면 충분히 (바람이) 될 수 있겠다.” (웃음)

 ◆“자연과 하나되는 이상적 공간”

 이 교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유학에서 의미하는 최고의 정신상태, 즉 자연과 하나되는 되는 상태에 이르고자 했다”며 “병산서원은 유교건축의 이상을 담아낸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병산서원을 제대로 보려면.

 “한국 건축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다.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게 중요하다. 입교당 대청 한가운데 앉아 만대루가 들어선 앞쪽을 바라보면 만대루 이층 일곱 칸 기둥 사이로 강물과 병산과 하늘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또 만대루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자연 가운데에 묻혀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연과 하나가 된 극적인 느낌을 주는 절묘한 공간배치다.”

 -극적인 느낌을 끌어내는 요소는.

 “입교당과 만대루의 높이, 밖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높이를 주목할 만하다. 경관을 제대로 보려면 보는 이가 자세를 계속 바꾸어야 한다. 눈높이에 따라 하늘과 산, 강물이 다 보이기도 하고, 강물이 보이지 않는 등 각기 다른 풍경이 보인다. 당시 건축가 역할을 한 목수가 경관의 프레임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다. 안에서 밖을 바라볼 때 산봉우리를 정면으로 보이게 짓지 않고 7~8부 능선이 보이도록 짓는 것도 한국 건축의 특징이다.”

 -경관의 프레임이라고 했다.

 “목수가 만대루 누각의 양끝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보라. 입교당에서 바라볼 때 시야가 확 트이도록 하기 위해 만대루 끝을 좌우로 길게 펼쳤다는 것이다.”

안동=이은주 기자

◆병산서원(屛山書院)=서애(西厓) 유성룡(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현재의 자리인 경북 안동시 병산리로 옮겼다.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강당인 입교당,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 신문, 전사청, 만대루, 고직사가 있다. 사적 제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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