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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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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광학보(廣學寶)는 고려 시대 장학재단이다. 정종이 불법(佛法)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했다. 무상(無償)은 아니다. 미곡 15두(斗)에 연 이자가 5두다. 연리 33%로, 사실상 고리대금업이다. 가난한 학생이 무슨 돈이 있으랴. 결국 집단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고, ‘배째라’ 식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 이에 ‘모자정식법(母子偵息法)’을 만든다. 이자가 원금을 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양상은 그대로다. 마치 한국장학재단의 원형(原型) 같다. 학자금대출로 신용불량 대학생이 급증할 판이란다. 연리 4.9%로 낮다지만, 그거야 돈놀이하는 입장에서다. 그냥 주는 ‘대장금(대통령장학금)’을 내세우나 일반 학생에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지식정보화 시대 글로벌 두뇌 유치 전쟁이 치열하다. 바야흐로 학력(學力)이 국력이다. 세계 최강 미국의 힘도 교육이 원천이다. 미국 대학이 각종 평가에서 상위권을 휩쓰는 이면에는 탄탄한 장학금이 있다. 돈으로 세계의 두뇌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것이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 설립됐다. 저개발국에 잉여농산물을 판 수익금으로 120개국 10만여 명을 미국에 유학시켰다. 한국도 이현재·조순 등 1000여 명이 미국의 지적(知的)자산 증식에 기여했다. 점심도, 장학금도 공짜는 없다.

 최근 대학의 ‘반값 등록금’이 화두다. 우리 대학의 학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에 이어 둘째로 비싸단다. 틀렸다. 명목 학비는 그래도 실제는 우리가 더 든다.

 미국에서 ‘아이비리그 장학생’은 아이는 똑똑한데 부모는 가난하다는 뜻이다. 성적이 아니라 학부모의 부담 능력에 따라 재정보조를 주기 때문이다. 예일대의 지난해 학비는 3만8300달러다. 재학생 57%가 1인당 평균 3만5400달러를 받았다. 이들의 실제 학비 부담은 2900달러로, 330만원쯤이다. 다트머스대는 46.3%가 평균 3만5504달러를 받았다. 하버드대는 70%가 사실상 무상교육이다. 학생들이 돈 때문에 공부를 못 한다는 말이 없도록 한다는 명문사학(私學)으로서의 자부심이다.

 반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서울 시내 15개 대학의 2009년 평균 등록금은 785만6000원이다. 장학금은 수혜자 1인당 평균 166만5000원이란다. 따라서 실질 학비는 619만1000원이다. 아이비리그보다 오히려 비싼 셈이다. 장학금 아껴 건물이나 짓는다. 그러니 대학이 등록금 장사치란 말을 듣는 것 아닌가.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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