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겨누는 중수부 … “저축은행 불법 1년간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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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2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은 전 위원은 부산저축은행 측에서 감사 무마 청탁과 함께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변선구 기자]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가 29일 은진수(50)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하면서 검찰의 칼끝이 헌법기관인 감사원으로 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은 전 위원에게 금품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는 윤여성(56·구속)씨가 또 다른 감사원 간부에게도 돈을 건넸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 요구로 이뤄진 부산저축은행그룹에 대한 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의 공동검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로비를 벌였을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월 28일~4월 2일 ‘서민금융 지원시스템 및 운영 및 감독실태’ 감사를 통해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저축은행들의 부실과 금융감독 당국의 부실감독 실태를 상당 부분 파악했다. 감사원은 감사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해가며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그해 5월 김황식 감사원장(현 국무총리)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기도 했다. 그해 8월 금융감독원이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의 비위행위에 대해 감사원과 검찰에 통보했지만 감사원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 처분요구서 의결은 4개월 뒤인 12월에야 있었다. 그나마 금감원 직원에 대한 문책은 보류됐다가, 부산저축은행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될 즈음인 지난 3월에야 최종 의결을 마치고 감사보고서를 채택했다.

 검찰은 감사원이 저축은행 감사를 마치고도 1년 가까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늑장 대응’의 경위를 살펴보는 한편, 은 전 감사위원을 비롯해 감사원 고위 인사에 대한 또 다른 로비가 있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초기부터 대검 중수부와 감사원은 저축은행 부실에 대한 파악 여부를 놓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이달 초 금감원과 예보, 감사원까지 나서 저축은행에 대한 장기검사를 벌이고도 부산저축은행의 비리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감사원은 “부산저축은행의 비리를 적발해 검찰에 정상적으로 통보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감사원은 해명자료에서 지난해 1~4월 실시한 감사를 통해 부산저축은행이 8791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일반 대출로 분류하고 연체이자 정리를 목적으로 3188억원을 증액 대출하는 등 분식회계를 한 사실을 적발해 검찰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검 중수부는 “감사원에서 받은 것은 지난 3월 부산저축은행을 압수수색하기 직전 요청해서 받은 1장짜리 감사 결과서가 전부”라고 반박했었다.

 감사원은 당시 두 기관의 ‘떠넘기기’ 공방으로 사태가 확대될 것을 우려한 듯 더 이상의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은 전 위원의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감사원의 늑장 대응과 저축은행 비호 여부는 이번 수사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검찰은 은 전 위원에 대한 조사에서 그가 부산저축은행의 청탁을 받고 감사원 감사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측은 은 전 위원의 소환조사 이후에도 로비 사실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로비에 의해 감사가 늦춰지거나 결과가 달라진 것은 없다. 김황식 당시 감사원장이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수시보고를 한 뒤, 6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부실 PF채권을 사들이는 등 일련의 조치가 있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 밖에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인 박형선(59·구속)씨가 세무조사와 관련해 국세청 관계자들에게 금품로비를 벌인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글=이동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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