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 되고 싶다”는 학생, 사정관은 왜 뽑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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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길이 4.5m 안팎에 몸무게 3.3~5t. 하마는 겉모습 때문에 미련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옷장 속 습기를 빨아들이는 제습제 ‘물먹는 하마’처럼 세상의 온갖 지식을 빨아들이는 하마이고 싶습니다.”

 유보리(20·여)씨는 2년 전 성균관대 자기추천자전형 지원서에서 스스로를 하마에 비유했다. 네 살 때부터 어머니가 읽어주는 최영미 시인의 시를 들으며 자란 그는 친구들이 아이돌 스타에 열광할 때 시집을 읽었다. 유씨의 독특한 지원서는 입학사정관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유씨는 올해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29일 만난 유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대학 생활이 정말 즐겁다”고 했다.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지원서에 썼던 대로 대학 신문기자로 경험을 쌓고 있다. ‘날씬한 하마’가 되기 위해 하루 3시간씩 러닝머신을 달려 20㎏을 빼기도 했다.

 성균관대 입학사정관 9명이 자신들이 직접 뽑은 합격생들을 인터뷰한 책 ‘시관(試官), 성균관 유생을 이야기하다’(사진)가 나왔다. 합격생이 쓴 경험담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나왔지만 사정관들이 직접 합격생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장점과 평가 기준 등을 담은 책이 발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책에 등장하는 11명의 학생은 하나같이 “내가 뽑힌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온갖 대회 입상 경력까지 갖고 있는 ‘엄친아’ ‘엄친딸’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정관들은 “합격생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답은 없지만 공통점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정말로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소아마비를 갖고 태어난 전현정(20·여·식품생명공학)씨는 고교 때 문과 출신이어서 자신이 지망한 화학 관련 전공과 거리가 있었지만 봉사활동 경력과 장애인들을 위해 신약을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학동양학부 2학년 최정우(가명)씨는 특별한 입상 실적이나 봉사활동 경력이 없었다. 역사체험캠프·논술 토론대회 참가 기록과 함께 자신이 직접 쓴 한국사 관련 논문과 글 20편을 제출해 합격했다. 상담사가 꿈인 채나연(20·여·인문과학계열)씨는 장애 1급인 아버지를 둔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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