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연의 매력 발전소] 윈프리와 월터스에게 경의 표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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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한 스튜디오가 빈틈 없이 꽉 메운 청중들의 기립박수와 톱 셀레브리티들의 잇따른 등장으로 떠내려갈 듯한 환호성에 휩싸여 있다. 톰 행크스, 마돈나, 어셔, 톰 크루즈, 비욘세, 마이클 조던, 윌 스미스 등 스타들이 등장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오직 한 사람에게만 비춰지도록 한다.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서서 잠깐 눈물짓기도 하는 그녀, 바로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25년 동안 진행해 온 ‘오프라 윈프리 쇼’의 종방, 마지막 녹화 현장이다.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 스타 방송인이며 기업인이다. 그녀가 25년을 공들인 오프라 윈프리 쇼가 종방을 맞게 되자 그녀에 대해 코멘트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나 스스로에게도 다시 묻게 되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인터뷰어로서의 그녀의 독특한 힘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라포르 토크(rapport talk)’라고 불렸던 대화법이다. 라포르는 심리학에서 주로 쓰는 말로 서로 믿고 존중해 일어나는 신뢰감, 그로 인해 자유롭게 이뤄지는 감정의 교류 등을 말한다. 그녀는 인터뷰이로 누가 나오든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늘 인터뷰이를 편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아니다. 나비처럼 부드럽게 날다가 반드시 한 번은 벌처럼 곤란한 질문을 쏘기도 한다. 물론 그녀는 이런 곤란한 상황도 이내 그 넉넉한 품으로 껴안는 듯한 제스처로 마무리하곤 한다. 많은 사람은 그녀의 이러한 대화법에 대해 그녀의 독특한 성장배경이나 아픔을 들어 분석 운운하곤 하지만 나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오직 그녀만 아는, 그녀 내부에서만 있었을 끊임없는 자가성장의 축적에 주목한다. 한 명의 훌륭한 인터뷰어는 성장배경, 또는 솔직함 같은 몇 가지 특성으로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인간’이라는 생물체를 대상으로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직업보다도 다차원적인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인생에 대한 직관, 사람에 대한 통찰, 대화의 맥을 짚어가는 논리력, 무엇이든 표현해내고 짚을 수 있는 풍부한 어휘와 활용의 기술, 여기에 소통과 감정이입의 능력, 방송에 대한 감까지 있어야 한다. 어떤 능력은 천부적일 수밖에 없고, 어떤 능력은 강철을 갈아 바늘을 만들듯 끊임없는 노력과 축적된 경험의 노하우로만 습득될 수 있다. 자질이 있는 인터뷰어라면 해를 거듭할수록 자가성장을 거듭할 수밖에 없고, 나이 든다는 것이 노화나 퇴보로 비춰지는 대신 더욱더 빛남으로 남게 되곤 한다. 왜? 축적의 삶이 그대로 인터뷰에 녹아나기 때문이다.

바버라 월터스

 80세가 넘는 고령에도 아직도 ‘더 뷰(The View)’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 방송계의 전설적 앵커 바버라 월터스는 이런 말을 했다. 방송계에 갓 들어와 그녀를 경외의 눈으로 쳐다보며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곤 하는 신참들에게 준비된 답변처럼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을 통째로 가져가야 하는데?”

 그녀의 이 말에는 수많은 뜻이, 아니,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녀가 겪고 부닥치고 쌓아온 그녀의 세월을 모르는 사람들은 짐작도 하지 못할, 많은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세상이 밖에서 보고 멋대로 재단하는 몇 가지 ‘재능’이 아닌, 그녀의 프로페셔널리즘과 그녀의 삶이 땀과 눈물로 빚어낸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바버라 월터스, 오프라 윈프리. 한 사람은 시사 앵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일반 토크쇼의 진행자였지만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인터뷰어’라는 것이다. 인터뷰어는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독특한 직업이다. 세상의 일반 대화에서도 배울 것이 많을 때가 있지만 인터뷰의 대화는 그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배움의 차이 또한 크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물을 만나며 이야기해야 하니 넓은 관심사와 정보를 습득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인생에 대한 통찰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스스로 또 한 명의 인간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는 프로페셔널로, 동시에 한 여성으로 삶을 살아가며 쌓인 간단치 않은 세월까지 더해지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한 인터뷰어의 인터뷰는 농익고 농익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 80이 넘은 인터뷰어와 이제 거의 60에 이른 인터뷰어의 인터뷰가 어떤 빛깔이겠는가.

 인터뷰어는 프리즘이다. 한 사람의 인터뷰이를 수많은 인터뷰어가 인터뷰할 수 있겠지만 어떤 인터뷰어냐에 따라 인터뷰의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웃고 떠듦에 그칠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인터뷰어가 어떤 프리즘이냐에 따라 인터뷰이를 다르게 해석해내기 때문이다. 멋진 그녀들, 그녀들만의 프리즘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그들만이 아는 노력과 투쟁의 시간에 경의를 표한다.

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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