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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17> 탱크 최경주의 땀과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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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커다란 수건이 흠뻑 젖을 만큼 최경주는 많은 땀을 흘렸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태양은 뜨거웠다. 짧은 퍼트가 살짝살짝 빗나갈 때도 캐디는 보스에게 수건을 건네야 했다. 그럴 땐 그냥 땀이 아니라 눈물이 수건에 배어드는 것 같았다.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가 열리던 지난 4월 8일, 오거스타는 이상 고온이었다.

최경주는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린다. 그와 동반자로 경기했으며 끝내 우승을 차지한 샬 슈워첼의 운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가슴은 더 타들어갔을 것이다. 공동 2위로 경기를 시작한 최경주는 그 열기를 뚫고 16번 홀까지 선두권에 머물렀지만 마지막에는 힘이 좀 달린 듯했다. 공동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 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근처에 있는 허름한 한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삼겹살과 총각김치를 안주로 최경주는 맥주를 몇 잔 마셨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우승 기회를 놓쳐 아쉽다고 했더니 “아직 내가 메이저 우승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을 때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쳤고 결과에도 만족하는데 젊은 선수들이 너무나 잘 치더라”고 말했다.

표정은 어두웠다. 다시 한번 좋은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이번에도 행운은 자신의 편이 되지 않았다는, 혹시 메이저대회 우승 없이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갈지도 모른다는 근심을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자신보다 먼저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양용은에 대한 부러움도 있는 듯했다. 땀방울은 계속 흘러 내렸다.

그러나 잠시였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걸쭉한 호남 사투리로 “언젠가는 찬스가 오겠지요”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것이 최경주의 본모습이다. 2008년 겨울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안 투어 싱가포르 오픈에서 그를 만났을 때다. 당시 최경주는 스윙 교정 중이었다. 세계랭킹 5위까지 올랐으면서도 적지 않은 나이에 스윙을 교정하고 10㎏이나 살을 빼겠다고 결심한 자세가 놀라웠다. 그러나 스윙을 바꾸는 동안 슬럼프를 겪었고 언론에서는 그의 리노베이션 진도가 화두였다. 그해 가을 최경주는 “60% 정도 교정이 끝났다”고 했었다. 기자는 3개월이 더 지났으니 80% 정도가 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내심 100%까지 도달했다고 하면 더 좋은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도 낸 것 같다.

몇 %인지를 묻는 나에게 그는 빙긋 웃으며 되물었다. “성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대해 만족하시나요. 몇 %쯤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몇 %라고 말할 수 없었다. 50%는 넘는 것 같지만 90%는 안 되고 그 중간 어디라고 찍기도 어려웠다. 만약 100%라고 하더라도 세상 모든 일에는 그 위가 있는 법이다.

최경주는 “항상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잘될 때 자만하지 않고, 잘 안 될 때 좌절하지 않으면 노력은 그 값을 다 하지 않을까요”라면서 “숫자로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요”라고 했다. 울림이 컸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골프라는 스포츠가 주는 인생의 은유에 대해 생각한 계기도 됐다. 올해 초 『골프는 인생이다』라는 책을 냈는데 그때 최경주 선수에게서 받은 인스피레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

최경주 선수가 제5의 메이저대회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오랜 캐디 앤디 크로저를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일 때 오거스타에서의 그 젖은 수건이 연상됐다. 최경주는 이 우승으로 메이저대회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털어냈을 테지만 진짜 메이저대회는 아니어서 가슴 한편에는 채워지지 못한 꿈과 한이 남아 있을 것이다. 2004년 스위스에서 열린 오메가 유러피언 마스터스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 챔피언스 디너로 청국장을 끓이겠다”고 하던 그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기자는 최경주가 몇 번 더 우승할 것으로 생각한다. 거기에 메이저대회가 포함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운과 시간이 그의 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더라도, 메이저대회 우승 숫자와 관계없이, 최경주는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흠뻑 젖은 그의 수건처럼 세상에는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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