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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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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계절의 여왕 5월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꽃가루 때문이다. 민감한 사람은 눈물에 콧물까지 범벅이 된다. 알레르기 증상이다. 장미야 꺾지 않으면 가시에 찔릴 염려가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봄을 보지도, 신록의 향기를 맡지도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꽃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흐드러진 개나리·진달래와 벚꽃·목련·장미의 꽃가루는 안심해도 된다. 벌과 나비가 찾는 충매화(蟲媒花)인 것이다. 바람을 이용해 화수분을 하는 풍매화(風媒花)가 문제다. 자작나무·버드나무·일본삼나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인간을 화수분에 방해꾼쯤으로 여겼나. 알레르기 현상은 사랑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비키라는 신호가 아닐까. 다만 소나무는 좀 다르다. 눈먼 처녀가 꾀꼬리 소리로 가늠하던 늦은 봄 송홧가루는 민감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반만 년을 지척에서 살아오며 서로 적응해 둔감해진 덕인가.

 5월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어디 꽃가루뿐이랴.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어머님 은혜’는 눈물 없이 부르기 힘들다. 스승님 은혜는 또 어떤가. 그래서 푸른 5월은 탄생석이 녹색 에메랄드이지만, 그 마음은 붉다. 존경의 카네이션도, 사랑의 장미도 단심(丹心)이다.

 요즘은 사라졌지만, 1980년대 5월이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인공 알레르기가 등장했다. 말 그대로 눈물로 앞을 가리는 최루(催淚)가스다. 춘투(春鬪)의 절정기인 노동절이 있고, ‘오월 그날’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는 붉은 머리띠, 붉은 가슴, 최루탄으로 붉게 충혈된 눈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면 5월은 모두가 붉다. 꽃도 사람도 ‘오월동주(五月同朱)’다.

 5월의 알레르기가 하나 더 있다. 자연도 인공도 아닌 심인성(心因性)이다. 5·16과 5·18이 대표적이다. 역사는 ‘이름 붙이기’라고 하는데, 마음속 평가가 엇갈리면서 가치 중립적인 숫자로만 부르는 경우다. 그럴 것이 5·16은 쿠데타와 혁명을 오갔다. 평가도 천양지차다. 5·18은 폭동에서 사태로, 민중항쟁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의의가 변천했다. 그래도 여전히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있다. 심화(心火)와 홍조(紅潮)는 이들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사실(事實)은 객관성, 사실(史實)은 역사성이 근간이다. 자연이나 인공 알레르기는 약이라도 있는데, 객관성과 역사의식 부재로 비롯된 심인성 알레르기는 어떡하나. 그저 세월이 약인가.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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