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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고 변신 일반고는 2부 리그로…나머지 일반고는 3부 리그로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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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 3월 서울 강남 8학군의 공립 A고 교장실로 신입생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중학교 내신성적이 상위 1%에 드는 딸을 인근 자율형사립고(자율고)로 전학시키고 싶어했다. 학교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은 결국 자율고로 옮겼다.

A고 교장은 “그나마 내신 경쟁에서 불리하다며 다른 자율고에서 중상위권 학생 한 명이 전학을 온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반고가 ‘3부 리그’로 전락하고 있다.

중학교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1부 리그)에 밀리다 현 정부가 학교 다양화 취지로 자율고(2부 리그)를 전국에 50여 곳 설립하자 또 다른 추락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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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휘문·양정·세화고는 본지와 입시업체 ‘하늘교육’의 2011학년도 서울·고려·연세대 합격 현황 조사에서 서울 지역 일반고 중 각각 1, 3,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세 고교는 자율고로 전환해 2013학년도 입시부터 자율고로 입학한 학생을 배출한다. 일반고와 특목고·자율고의 격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일반고가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일단 우수 학생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평준화 지역의 고교 배정은 특목고와 자율고, 특성화고를 전기(前期)에서 선발하고 남은 학생들을 후기(後期) 일반고에 배정한다. 일부를 제외하면 평준화 지역 자율고에는 선발권이 없지만 서울은 내신 상위 50% 이내에서 추첨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적이 괜찮은 학생들이 지원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중학교 성적이 50% 안에 들면 요즘은 자율고부터 지원한다”며 “후기에서 뽑는 일반고는 출발에서부터 특목고와 자율고에 뒤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C 일반고에 입학한 신입생의 중학교 내신성적 평균은 2008년 상위 38.5%에서 올해 48.6%로 낮아졌다.

 교육과정 등 학교 운영 자율권이 적은 것도 일반고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일반고는 기본교육과정의 20% 이내에서 수업시수(시간 수)를 변경할 수 있지만 자율고는 50%까지 가능하다. 본지가 서울 A 일반고와 B 자율고를 비교해봤다. A고의 3년간 수학 수업시간은 24단위고 B고는 30단위다. 1단위는 한 학기 동안 일주일 1회 수업을 의미한다. 따라서 A고는 수학의 경우 일주일에 B고보다 한 시간 적었고 영어도 B고에 비해 덜 가르쳤다. 반면 대학 입시와 관련이 적은 체육·예술 교과는 A고가 B고보다 1시간 많았다.

 재정 면에서도 자율고는 기준 등록금의 3배까지 받을 수 있어 유리하다. 장학금과 학교 시설 면에서 일반고가 따라갈 수 없는 형편이다. 박범덕(서울 언남고 교장) 국공립고교장협의회 회장은 “선발권도 없고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성도 부족해 일반계고는 손발을 묶고 달리기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내신이 불리한데도 특목고·자율고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은 대학 입시에서 내신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이사는 “서울 상위권 10개 대의 2011학년도 전형을 분석해봤더니 고교 내신에 중점을 둬 선발하는 인원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고 등급 간 점수 차도 적다”고 말했다. 그는 “특목고생들의 수능 성적이 좋아 입시에서 불리한 내신을 만회할 수 있어 우수 학생의 일반고 외면 현상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들도 일반고의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본지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공동으로 지난달 일반고 교사 38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86.1%가 일반고의 교육 경쟁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81.8%는 현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 추진 이후 일반고 입학생의 성적 수준이 낮아졌다고 했다.

 일반계고가 위기에 처한 이유로 교사들은 선발권 있는 학교의 증가(40.4%)와 자율고·마이스터고 등 ‘특수학교’의 난립(26%)에 이어 교육 과정 편성 자율권 같은 불리한 제도(12.1%)를 꼽았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학교 다양화와 수월성 교육을 위해 특목고와 자율고는 필요하고 성과도 있다”며 “하지만 고교생의 90%가 다니는 일반고에 대한 균형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석만·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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